▧ 제 언 ▧
"누가 사람을 칼로 찔러 죽였다. 죽이는 것을 내가 봤다. 빨리 도와 달라." "정전된 사이에 옆방으로 칼을 든 남자가 들어왔다. 무섭다. 빨리 와 달라."

이 급박해 보이는 신고는 3개월 된 신임 경찰관이 지구대 상황 업무를 하며 접한 황당한 허위신고였다. 이 외에도 다수의 허위신고가 있었고, 그때마다 경찰관은 신고 접수부터 현장 종결까지 피가 마르는 듯,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피해자가 위험에 처한 상황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한다. 어떤 신고라도 신고자에게는 급하겠지만, 경찰관에게 이 같은 허위신고가 접수되면 다른 민원 신고자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처리한다. 하지만 단순 민원이 아닌 진짜 범죄였다면, 허위신고 때문에 범죄에 직면한 피해자에게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경찰관이 놓치게 되고 크나큰 범죄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경찰관이 아무리 고생을 해도 이런 경우엔 자책감이 들고 고개를 들 수 없다.

최근에도 "자살하겠다" 등의 내용으로 23일간 182차례에 걸쳐 112 허위신고를 한 60대 남성이 구속됐다. "생일인데 너무 외로워서 그랬다" 너무 개인적인 이유였다. 경찰 통계에 의하면 이런 112 허위신고는 지난해 9887건이었고 이중 1682건에 대해 형사입건 등 처분을 하고 악질적이거나 피해가 큰 경우에는 손해배상 청구소송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허위신고를 한 본인이 입는 법적·경제적 제재보다 더 무서운 것은 허위신고로 인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이웃이나 가족이 그 피해자로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도 쉽게 간과한다는 점이다.

그간 경찰은 위급한 범죄와 사고 현장에서 신속한 출동과 정확한 현장 대처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 10월 말부터 개정·시행되고 있는 경범죄처벌법상 허위신고는 60만원 이하 벌금 또는 30일 미만의 구류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112허위신고의 횟수 및 경위, 신고자 연령, 동원된 경찰력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계로서 공무원의 직무 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도 있다. 아울러 허위신고 근절을 위해 관공서를 통하거나 마을 간담회와 학교 범죄예방교실 등에 직접 찾아다니고, 전단지와 SNS, 트위터 등으로 예방 홍보를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112허위신고는 여러 가지 행태로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이는 경찰력 낭비와 국민에 대한 피해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는 허위신고로 낭비해도 될 만큼 경찰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유병언·유대균과 관련해 제보하겠다는 허위신고도 적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 흐름에 따라 허위신고 역시 같이 흘러가는 것처럼 줄지 않고 있다. 허위신고는 사회에 불신을 조장하는 범죄 행위다.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는 떨리는 손으로 다급하게 112 숫자를 누르고 경찰관이 달려와 주길 간절히 기다리는 주민이 있고, 112신고 출동 지령을 받고 초를 다투며 출동 중인 경찰관이 있다. 이런 점에서 성숙한 국민들의 신고의식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잠깐의 호기심과 장난으로 한 허위신고 전화 한 통화가 급박한 상황에 처한 내가족, 내 이웃에게 피해로 되돌아오는 부메랑 같은 현상이 일어난 후에야 땅을 치고 후회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터이다.

/김정미 계양경찰서 계양산지구대 순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