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교육감 후보 인물탐구 - 이본수
이본수 인천시교육감 후보는 1946년 10월 전라도 여수에서 삼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그의 나이 세 살때에 지병으로 돌아가신 탓에 어머니 홀로 삼남매를 키우셨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효도는 공부 밖에 없다는 생각에 학업에 열중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하자 여수고등학교 후배인 허영만 화백은 "여수 일대 학교를 졸업한 그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몇날 며칠동안 지역 내 가장 큰 뉴스로 지역주민들 사이에 오르내렸다"고 회상했다.


▲ 이본수 후보가 서울대 응용화학과 재학 시절 연구실에서 실험에 열중하던 모습.
▲서울대에서의 학창생활 뒤 아주대 교수시절

전라도 여수에서 태어난 그는 여수중앙초와 여수중, 여수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공과대학 응용화학과에 진학했다.

졸업반이 된 뒤 어려운 집안형편에 취업을 준비하던 중 은사인 나익영 교수의 권유로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 유급교수와 강사로 일하며 공부를 계속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아주대학교에서 첫 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아주대 시절 국비파견 교수제도의 혜택으로 미국 버클리대학교에 방문교수로 1년간 다녀온 그는 당시 학장이었던 이한빈 교수의 부탁으로 미국의 대학입시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하기 위해 비교했다.

미국에서 귀국한 그는 입시제도에 내신성적을 반영하는 것을 건의, 입시제도에 내신성적을 반영하도록 했다.

아주대에서 조교수와 부교수를 거친 그에게 인하대의 정교수 제안이 들어왔다.


▲ 2007년 인하대 부총장 시절, 등록금 협약서를 체결한 뒤 밝게 웃는 이본수 후보.
▲인하대 교수 시절

인하대의 제안에 1982년 그는 인하대 이과대학 화학과 교수로 적을 옮긴다.

인하대로 옮긴 뒤 그는 최연소 교무부처장과 교무처장 등을 지내는 한편 이과대학 기초과학연구소장을 지내기도 했다.

이후 2012년 인하대학교 총장으로 퇴임하기까지 인하대학교를 취업률 4위, 이공계열 취업률 4년째 1위, 전국 대학 연구성과 6위, 전국 10대 대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특히 인하대에 인천 유일의 법학전문대학원을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물류가 활발한 지역사회의 특성에 발맞춰 물류법과 특허법 등을 중점으로 특화된 인재들을 해마다 50여명을 배출해내도록 만들었다.

인천 송도신도시에 연세대가 송도캠퍼스를 조성한다는 소식에 TF팀을 꾸려 송도 제 2캠퍼스를 유치해내기도 했다.

세계 수준의 대학원과 지역우수대학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부의 프로젝트인 Brain Korea21사업을 통해 해마다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지원받는 사업을 선두에서 총괄하기도 했다.


▲인천교육을 바꾸자

그는 최근들어 인하대학교에 입학하는 인천출신 고등학생의 수가 매년 감소하고 있는 것을 보며 인천 중등교육, 특히 고등학교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인하대 총장 퇴임 이후에도 교육현장을 방문해 교육계 최전선에 있는 전문가부터 학생과 학부모까지 만나며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결과 그는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냈다.

과도한 스펙경쟁에 시달리는 요즘 세대의 학생들에게 단순히 시험만 잘 치는 기계가 아닌 지구력을 갖춘 인재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게 해야하며 기초지식, 기초체력, 기초인성을 키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진로를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적·이념적 문제에 경도되거나 교육적 기본을 등한시 한 채 아이들 머릿속에 지식만 넣어주려 하는 현재의 교육으로는 학교폭력이나 각종 청소년 문제만을 불러올 것이라는 그가 가진 교육철학이다.

/김상우 기자 theexodu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