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황규광 동얀탄소고문
2008년 8월 14일 (목, 제19일)

지난 2일간 란떼빠오를 중심으로 또라자의 여러 곳을 거의 찾아 다녔다. 오늘 여기에서 또라자에 관해 간단히 정리하고자 한다. 본래, 또라자족은 옛 말레이계의 해양민족이었으나 나중에 술라웨시 섬에 온, 신·말레이계에 쫓겨 강을 따라 이 산 속의 오지까지 도망쳐왔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다른 민족과의 교류를 끊고 살아왔다. 선형가옥(船形家屋)인 똥꼬난은 자기들의 조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대나무를 여러 겹으로 정성들여 쌓아올린 지붕은 바로 예술품이다.

또라자라는 단어는 부기스어로 「고지의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또라자족은 장대한 장례형식이나 높은 암벽에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습관, '똥꼬난'이라고 하는 거대한 지붕의 전통적인 가옥양식 등 독특한 풍습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이전, 또라자족은 자치권을 가지고 애니미즘을 신봉하면서 외부와 격리된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1900년대 초, 네덜란드의 선교사가 그리스도교의 선교를 위해 또라자 마을을 찾은 것이 이들과 외부세계의 첫 접촉이었다.

'따나 또라자'는 망자(죽은 사람)와 더불어 사는 땅, 평생을 준비하는 산 사람(죽은 사람 아닌)을 위한 장례풍습으로 유명한 곳이다. 또라자족은 '생'과 '죽음'은 동등하며 또한 상대적으로 생각하면서, 이 양자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풍요나 생식에는 상응하는 '죽음'이 필요불가결하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여성이 담당하는「생」의 출산은 상계(上界)로부터 혼을 불러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남성은「죽음」을 담당하고 '목 사냥'이 마을에 풍요를 가져다주기 위한 의무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생관은 그들의 '장대한 장례'의 제례(祭禮)에도 반영되었다.

오늘은 갈 길이 멀어 란떼빠오의 똥꼬난 호텔을 오전 6시 40분에 떠나 산들이 다가선 산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오늘 내려가는 고도는 해발800m정도이다. 엔레깐 마을에서부터 고개를 넘고 푸른 논과 숲이 우거진 지역을 지나 산허리의 전망대(해발550m)에 도착하여 차를 마시면서 쉬었다. 또라자로 올 때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던 밤바뚜앙(에로틱 마운틴, 여성계곡)이 바로 앞에 보인다. 서울 북한산의 여성봉(女性峰)과 비슷한 산이다.

이 부근의 산기슭에서는 카카오, 산 중턱에서는 또라자·커피가 재배되고 있다. 또라자·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네덜란드 왕실에 진상할 정도로 고급품이었다. 그러나 전후에 인도네시아가 독립하고 네덜란드인이 추방되고부터는 또라자 커피산업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일본기업이 20년 동안 근대적인재배기술과 품질관리를 도입하여 지금은 또라자의 커피사업도 궤도에 올라서 있다.

마카사르에서 '란떼바오'까지는 약330km이며, 이 길이 개통된 것은 네덜란드 통치시대의 1927년이다. 그러나 도로가 포장되고 승용차가 다닐 수 있게 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부터다. 지금까지 산길을 다 내려와 오전 11시 30분(32℃), 항구도시 빠레빠레(Parepare)에 도착하였다. 빠레빠레는 마카사르에서 156Km의 위치에 있으므로 오늘 갈 길의 약1/2은 왔다. 이곳은 남·술라웨시 주(州)의 두 번째로 큰 상업·항만도시이다. 빠레빠레 항은 마카사르 항보다 작으나 수심이 깊어 천연의 좋은 항구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인(민간인) 600~700명이 '슬리리 농장'의 수용소를 나와 이곳에서 일본으로 송환되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해안가의 집들 사이에서 이슬람사원의 하얀 미나렛(첨탑)이 유난히 눈에 띈다.

오후 3시 50분, 또라자의 호텔을 떠나고 9시간 10분 만에 마카사르 신공항에 도착했다. 오늘도 긴 거리를 무사히 왔다. 비행기 출발시간까지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다. 마카사르는 옛날부터 향신료의 선적지로 번성하고 옛날 마카사르인이 세운 고와왕국(17세기)의 수도였다. 마카사르는 1971년~1999년에는 '우중빤당'이라 불렀다.

오후 6시 05분, 마카사르 신공항을 이륙하고 1시간 후 발리 섬의 덴파사르(Denpasar) 공항에 착륙했다. 이것으로 넓은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을 19일간에 걸쳐 한 바퀴 돌아왔다. 덴파사르 호텔에 도착하니 지난 8월 7일, 헤어졌던 길석환 선생부부가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