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 백남준-세계도시 인천'전을 가다
멋지기는 한데…, 저런 건물이 과연 실용성이 있을까. '트라이 볼'(Tri-bowl) 건물은 밑이 좁고 위쪽이 넓은 '사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트라이 볼이란 이름은 '세개의 그릇'이란 뜻이다. 나름 실용성과 예술성을 따져보며 우주선의 입구처럼 생긴 출입구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서 환한 미소로 첫인사를 건네온 존재는 다름아닌 로봇이었다. '보이스, 보이스'(Beuys/Voice)란 이름의 로봇은 밤색나무 커버를 씌워놓은 오래된 TV로 만들어진 모습이다. 무지개 같은 빛의 파장들이 화면을 분주히 수놓는다. 로봇의 몸을 이루고 있는 각 화면은 그러나 밀접하게 맞물려 로봇이라는 하나의 완전한 유기체를 빚어낸다.
비탈진 층계를 따라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트라이 볼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는 넓어 보였다. 원형극장에 닿자 공룡만큼이나 거대한 두 개의 작품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산하고 있다. '거북이'(Turtle)와 '비디오벽'이다. 166개의 모니터를 사용, 가로 10m, 세로 6m의 거북이와, 94개의 모니터로 만든 가로 9.6m, 세로 3.3m의 비디오벽은 '세계인 백남준-세계도시 인천'의 하이라이트 작품이다.
거북은 백남준 선생의 전통적 모티브로 그는 살아 생전 "나는 거북이, 호랑이다"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현란하면서도 변화무쌍한 화면이 '따로 또 같이' 만들어내는 파노라마는 거대한 이미지를 구축하며 관람객을 압도한다. 미래세계를 암시하는 듯한 신비함과 미술적인 예술성의 결합은 장엄함마저 느끼게 한다.
백남준의 작품은 얼핏 보아 무질서해 보인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모니터를 모아 놓은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의 작품은 화면에서부터 지지직 거리는 TV의 잡음 하나까지 철저하게 계획되고 준비된 것들이다.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기 위해 오디오 채널과 영상 채널을 조작해 하나의 작품을 피워냈다는 얘기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레퀴엠 음악을 들으며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작품 '네온 TV시리즈'는 소품적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 귀여우면서도 유머러스하다. 네온으로 동그란 안경을 만들어 TV화면 안에 가둔 것은 백남준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1972년 제작된 'TV 침대'는 침대라는 일상의 소재와 TV모니터의 결합을 시도한 작품이다. 백남준의 작품 파트너였던 '샬롯 무어맨'을 위한 비디오 조각으로 그녀가 누워서 TV첼로를 연주하는 퍼포먼스를 엿볼 수 있다. 함축적인 표현을 통한 섹슈얼리티는 첫 발표 당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천정에 매달린 '비디오 샹들리에'는 관객들은 유럽 중세시대로 초대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 비디오 아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백남준의 자유로운 필치를 한껏 맛볼 수 있는 그림은 그의 순수함을 잘 보여준다. 사람과 동물, 산과 강, 나무 등의 이미지는 마치 어린 아이들이 그린 것처럼 해맑은 터치로 잠자던 동심을 일깨운다.
40분쯤 걸렸을까. 한바퀴를 다 돌고나자 백남준의 불꽃 같은 일생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간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백남준의 작품들은 미국 레이니어 그룹(Rainier Group)의 홍성은 회장이 소장한 것들이다. 그는 1996년 독일 함부르크에 있던 작품들을 인수했으며 그 가운데 뛰어난 작품들만 이번에 내놓았다.
레이니어 그룹과 공동 주관을 맡은 (주)월드기획 김연중 대표는 "백남준 선생은 세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아방가르드적 삶을 산 글로벌 맨이었다"며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60년도 초기부터 90년도 초반까지의 작업세계를 통해 그의 상상력과 비전이 문화·예술과 인류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되짚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트라이 볼 준공기념으로 열리는 '세계인 백남준-세계도시 인천'전은 오는 7월18일까지 계속된다.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관람(오후 5시15분까지 입장 가능)할 수 있으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032-831-2133 /김진국기자 blog.itimes.co.kr/free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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