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흥모 경기본사 정경부장
비무장지대를 주 무대로 했던 세계평화축전이 지난 11일 막을 내렸다. 장장 42일간을 숨 가쁘게 달려왔을 터, 이제 남은 일은 차분하고 냉정한 평가와 행사 이후의 문제들이다.
수면하의 입씨름이 벌써 한창이다. 주최한 쪽에서는 100만명의 인파를 강조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200억 원의 투자재원을 시비삼는다.
시시비비를 가리기에 앞서 우선 평화에 대한 문제제기는 바람직하고 마땅했다고 본다. 한반도는 세계를 향해 평화를 말할 권리가 있다. 정부가 됐든, 경기도가 됐든, 세계사의 오욕이요, 세기사의 유물로 남은 분단의 현장에서 세계를 향해, 크게 한번 울어젖힐 법 했다.
구스마오와 테드테너 등 저명인사들이 참여해 분단의 의미를 나눴고, 평화를 주제로 한 강연과 학술회의, 주제별 공연이 분단의 현장을 달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남한의 대학생들이 만나 평화를 주제로 토론을 이어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접근부터 만만치 않고, 주제도 만만치 않은 분단의 현장에 100만의 인구가 찾았다는 것도 결코 작지 않은 성과다. 부디 이들이 분단의 의미를 아로 새기고 평화의 불씨를 안은 집단적 사도로 태어나갈 기대한다.
그러나 이제 행사는 막을 내리고 냉혹한 평가만 남았다. 행사가 의미있었다면 크고 작은 비판들에 귀를 막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완성도를 두고 말하자면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 인색하지 않았으면 한다.
첫째 행사 주체의 문제가 남을 수 있다. 명망가들이 두루 포진한 추진위원회 일부에 도 대표 한두 사람쯤 끼워 넣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만은 일부에서는 도민들의 참여배제를 아쉽게 생각한다. 주제자체가 지역의 한계를 넘어서고 지역이기적 관점을 허락하지 않지만 역으로 도내에는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단체가 그렇게 없는지는 고민해야 할 문제다. 무엇보다 평화를 주제로 고민하고 역량을 쌓은 시민단체들의 참여가 배제됐다는 점은 아쉽다. 도가 기획하고 전문기획자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를 주도함으로써 관 주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예산의 문제다. 혹자는 지방예산은 지방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는 지방재정법 및 지방자치법상의 취지와 한계를 지적한다. 배분의 효율성이나 우선순위의 문제도 따져봐야 한다. 일례로 복지문제를 고민하는 시민단체들은 경기도의 노인복지 예산이 광역단체 중 꼴찌에서 순위를 다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행사장에서 제공되는 각종 편의에 대해 ‘경기도가 이 정도로 돈이 많으냐’는 비아냥과 비판이 쏟아졌다는 얘기들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만은 아니다. 지방채 발행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200억원의 행사예산이 적절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할 일이다.
셋째 특히 비판적인 견해들을 종합해 보면 역시 행사의 ‘진정성’에 대한 회의로 집약된다. 미군 주둔지 문제로 아우성치는 평택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 일언반구도 없던 경기도가 뜬금없이 무슨 세계평화축전이냐는 것이다. 미군문제를 배제한 평화가 여전히 한반도에서 가능한 것이냐는 물음도 제기된다. 평화단체가 철저하게 배제된 행사주체의 문제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할법 하다.
그러나 여전히 ‘평화를 축제’로 해보자는 문제제기는 새로웠다. 고난과 상처의 현장을 착찹한 심정으로 다녀갔을 100만의 시민들도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다. 이로 인해 평화는 축제의 상징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이제 남은 것은 추상의 언어, 관념의 언어 평화를 매개로 명실공히 ‘세계인이 함께 나누는 축제’를 만들기 위한 실천적 노력과 인식이다. 열정을 메우는 실천이 뒷받침돼야 평화는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도가 벌써 사후관리에 들어갔다고 한다. 시설물 관리차원이 아니라 평화에 대한 인식의 저변을 확대하고 평화세력의 결속과 연대, 실천을 모색하는 적극적 인식이 축제 이후의 새로운 시작임을 분명히 했으면 한다. ‘여러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평화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경기도가 가졌다’고 선언한 주최측의 자신감을 이후로도 꾸준히 확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