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 세계 연
 ‘그것은 나의 고독한/혈통에서 부터 이어져 있는/앙상한 나무 이파리/그 드러난 /힘줄기//그것은 어린 눈망울에/글썽하게 남았던/슬픈 연의 미귀를/기다리는 끊어진 실 줄기//…그리고 그것은 추운 땅/어느 앙상한 나뭇가지에/아직도 기폭 처럼 찟기우며/흔들리고 있을까’
 향토시인 낭승만의 ‘고독의 실오락’ 한 부분이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걸려 찢기우는 연을 연상케 한다. 연싸움 하다 끊어진 연은 남의 집 지붕이나 대추나무에 걸려 혼자서 날린다. 큰 대추나무에는 연이 잘 걸리는데 하나도 아니고 여럿일 경우 그 모습을 빚 많은 사람의 신세에 비유하느라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이라는 속담이 생겼다고 민속학자 최래옥 교수는 말한다.
 연은 세계적으로 분포한다. 기원전 400년 그리스에서 만들어졌다는 기록을 보아서도 짐작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그보다 200년쯤 늦어 한신이 군사적 목적으로 연을 만들었다고 전한다. 하긴 그리스와 비슷한 시기 중국의 묵자가 3년간 나무로 연을 만들었는데 하루를 날리고 망가졌다고 한다.
 연의 군사적 이용은 우리나라도 같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김유신 장군이 연을 이용 반란군을 진압 흉흉해진 민심을 바로 잡았으며 고려말 최영 장군은 연에 병사를 태워 절벽위로 상륙시켰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도 임진왜란때 군사작전에 연을 만들어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경남 통영연에는 충무공의 휘하 장수의 직명을 딴 이름들이 붙여져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연날리기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이다. 특히 설날의 대표적 놀이였는데 중부이남에서 액을 떨쳐 버린다며 연에 ‘재앙厄’자를 써 날려 보냈다. 북한지역은 추수가 끝난후에 했다. 해방직후 인천에서는 여름에 연날리기가 성했었다. 동네 대항 연싸움을 견줄때는 담을 쌓듯 늘어서 구경했었다.
 여주 대신면에서 ‘우리의 연, 세계의 연’이라는 주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점차 전통놀이가 사라져가는 요즘 우리의 놀이 하나쯤 어린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도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밑거름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