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양당, 논의 없이 '네 탓' 공방
개발제한에 낙후·보상도 제각각
대구·광주는 동맹 맺어 정부 설득
책임 소재보다 해법, 머리 맞대야
4·10 총선을 앞두고 수원시와 화성시 지역 최대 현안인 '군공항 이전'에 대한 여·야 거대 양당의 네 탓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한 '협치'가 중요한 사안인 만큼, 유권자들 사이에서 우려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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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일보는 유권자 알 권리 차원에서 그간의 보도 기록을 기준으로, 군공항 피해 실상과 굵직한 정책의 변천사를 정리했다. 또 국회에 바라는 주민 목소리와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위한 정치 원해”
최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국회의원 출마 후보자들이 군공항 이전이 지연된 원인을 놓고 극렬히 다투고 있다. 수원시의회 일부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공격과 공격이 오가고 있는 상태다. 수원·화성 지역 주민들은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볼까. 책임에 대한 진실이 어떻든, '현 상황 자체가 불편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소음피해 지역인 수원 서둔동의 주민자치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도은숙씨는 “누가 봐도 모든 정치인이 나서야 하는 현안임에도 서로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민의 눈으로 봤을 땐 나중에 뭘 할 수는 있나 싶다”며 “주민 고통이 말로 설명을 다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기가 뜨면 전쟁터 같은 소음에 아이들은 놀라고, 각종 개발제한에 지역은 낙후되고 있다. 군공항 소음 보상도 같은 아파트인데 누군 받고 누군 못 받는다”고 토로했다.
특히 그사이 타 지역에선 해결 기미가 보이는 것 같아 주민들의 좌절감이 더 컸다.
수원역 앞에서 만난 이영희씨는 “대구 쪽은 국제공항으로 바꿔서 이제 건설 단계까지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왜 우리는 시간만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싸우는 것 좀 그만보고 싶다”며 안타까워했다.
화성에서 소음피해가 큰 소음피해 지역인 병점동의 주민 김모(35)씨는 “정치인들끼리 절대로 싸울 때가 아니다. 수년 동안 이전 문제가 복잡하게 꼬였기에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대구시와 광주시 정치권은 지난해 양 지역에 특화한 군공항 이전 특별법을 제정하는 데 성공했다. 여·야 정치인들이 협치와 정부 설득에 힘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도 '달빛 동맹(두 지역 지명에서 유래)'을 기반으로 철도·산업에 관한 특별법을 구상하고 있다.
전문가는 '책임 소재'를 찾는 것은 정책 실패의 지름길이라 분석했다.
군공항 갈등을 연구해온 전형준 한국조지메이슨대학교 연구위원은 “윈-윈(win-win·상호 이익) 전략으로 가야 하는 건데, 책임만 따지면 루즈-루즈(lose-lose·모두의 패배)로 연결된다. 명확히 문제가 있는데 '모든 정치의 잘못'이라고 말할 순 있어도, '어디 잘못도 아니다'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유권자 시각에선 누가 해법을 찾느냐, 어떤 부분을 얼마나 더 기여할 수 있는가에 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갈등관리 차원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집결하고 힘을 합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필수 과제'가 된 군공항, 왜?
수원시와 화성시 일대 약 5.2㎢에 걸친 군공항은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인 1940년대 일본군에 의해 건설됐다. 해방 이후 우리 군으로 소유권이 넘어왔다. 80년 넘게 그 자리 그대로다. 하지만 두 지역이 인구 총합 220만명에 육박하는 대도시로 발전하면서 '기형적 구조'가 야기됐다.
전투기 훈련으로 34.2㎢에 달하는 면적이 직·간접적으로 소음 영향을 받는다. 대법원 판결상 '수인한도(사람이 참을 수 있는 정도)'인 80웨클 이상 반경 단독·공동주택 인구는 약 12만명이다. 민간항공기 소음보상 기준인 75웨클 이상 반경으로 넓히면 약 25만명까지 확대된다.
소음으로 인한 피해 학교 수는 33개교(초21·중7·고5)로 추정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치면 100곳은 족히 넘는다. 수원 한 초등학교 설문 조사에서는 90% 비율의 학부모가 '학습 방해'를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교직원들이 도 교육청에 '학생 난청이 우려된다',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 '소음으로 불안한 행동을 보인다'는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낸 적도 있다.
2022년까지 66만5382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소음피해 소송을 제기해 2246억여원의 배상이 이뤄졌다. 배상액은 2019년만 1400억원대였으나, 3년 만에 2000억원을 돌파했다. 화성 진안지구, 수원 당수지구 등 정부의 택지개발지구 등 추가 입주여건을 고려하면 수십만명 인구 증가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다.
인천일보는 2018년부터 단독보도 등으로 이 같은 피해 데이터를 취합한 바 있다. 주민 삶의 질, 비용 측면만 아니라 안정적인 국가 안보 시스템에서도 문제가 있다. 2021년 훈련 중인 F-5 전투기가 화성시 야산에 추락해 조종사가 순직했다. 사고 당시 그는 충분히 비상 탈출할 수 있었지만, 약 120개의 민가가 있어서 희생을 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군 측으로 제기되는 항의성 민원도 끊이지 않아 야간 훈련 등에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여·야, 꾸준한 대책에도 해결은 '요원'
도심 속 군공항을 다른 곳에 옮기자는 '이전론'은 30년도 지난 과거에 등장했다. 1992년 12월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故) 백기완 사회운동가가 이전을 제시했다. 한나라당은 2007년부터 전국적인 군공항 이전 여론에 주목했고,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도 검토하기 시작했다. 다만, 수원이 아니라 대구지역 현안을 주로 다루는 분위기였다.
수원에 지역구를 둔 김진표 국회의장(민주당·5선)이 흐름을 가속시켰다. 그는 2009년 2월 '도심항공작전기지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최초 발의했다. 현행 특별법의 모태라 할 수 있다. 그 뒤 여·야 의원 수십명도 비슷한 법안을 쏟아냈으나, 정부 반대의견 등으로 국회 통과 벽은 넘지 못했다.
2013년에야 법안이 수면 위로 올랐다. 가장 큰 건 여·야가 힘을 합쳤다. 김진표·김동철·유승민·신장용 등 4명 의원이 각각 발의안을 통합했으며 그해 3월 '군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한 달 전 출범한 박근혜 전 대통령 정부는 군공항 업무를 추진했다. 대통령 공약에도 반영돼있었다. 그런 사이 김문수 전 경기지사(한나라당)와 염태영 전 수원시장(민주당)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군공항 이전 대책을 모색했다. 염 전 시장은 2014년 3월 특별법 제정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전 건의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2017년 2월 국방부는 화성시 화옹지구를 예비이전후보지로 지정했으나, 지역에 찬·반 논란이 빚어지자 추진을 중단했다.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대통령 정부도 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공약 차원에서 군공항 이전을 추진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어떠한 갈등 해소 방안을 내놓지 못했고, 각종 오해만 퍼지며 주민 간 대립의 골이 깊어졌다. 민선 6기였던 도는 남경필 전 지사 지시로 TF(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중재 등에 나서려다 포기했다.
이례적으로 민주당의 황대호 도의원 주도로 도내 학교의 소음피해를 지원할 수 있는 조례가 2019년 9월 제정됐다. 전국 최초다.
2020년 3월 8개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군공항이 아닌 '경기국제공항'으로 확대해 건설하는 방안을 요구했다.
이후에도 주민들로부터 이전 요구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됐으나, 대통령 당적이자 국회 의석을 대다수 차지한 민주당 내부는 각기 다른 주장으로 특별법 개정 등에 합의하지 못했다. 2021년 10월까지 이재명 전 지사가 재임한 민선 7기의 경기도는 업무 의사가 아예 없었다.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수원을 방문, 주민들 앞에서 이전 관련 노력 및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후속으로 정부 차원의 해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2023년 1월 경기도는 경기국제공항 건설에 대한 검증과 복수 후보지 물색 등 방안을 구상했다.
앞서 김동연 지사는 민선 8기 공약으로 삼으면서 도의 업무가 본격 시작됐다. 단, 갈등을 고려해 군공항 이전은 전제하지 않기로 했다.
국민의힘이 다수인 수원시의회는 2023년 6월 국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1월 '민생 토론회'를 위해 수원을 다시 찾아왔는데, 지난번과 달리 군공항은 언급 자체가 없었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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