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부평에서 양지원공구 첫 발
직원 12명이 절삭 공구 생산 시작
26개국 33개 사업장 갖춘 기업 성장
'엔드밀' 시장 섭렵…각국에 사업 거점
해외 인력 4300명 오늘도 '구슬땀'
'양지원공구'라는 간판을 내건 작은 공장이 1982년 인천 부평구 청천동에서 가동을 시작했다. 직원 12명이 생산한 제품은 절삭 공구인 '엔드밀'이었다. 40여년간 절삭 공구로만 한 우물을 판 회사는 26개국에서 33개 사업장을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엔드밀 세계 시장을 석권한 자부심은 '양지원공구'를 '와이지원(YG-1)'으로 거듭나게 했다. 송호근(71) 와이지원 회장은 전체 절삭 공구에서 세계 1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여전히 지구촌을 누빈다. 신용석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국제협력특보가 지난달 12일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와이지원 본사를 찾아갔다. 해외 출장을 다녀온 송 회장은 또 다른 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경제자유구역 입주 기업과의 대담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본사에 연구소가 함께있네요.
-연구 인력이 본사에만 80∼90명, 그리고 충주에도 40∼50명이 있습니다. 국내 직원 1750여명 가운데 240명 정도가 본사에 근무하고 있어요. 2020년 입주하기까지 사옥 건축에 공을 들였습니다. 외부 회의도 본사에서 해결할 때가 많으니까 해외 바이어들이 왔을 때 사옥을 둘러보면서 감격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직원 만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식당과 주차장 같은 시설에도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자율좌석제를 도입해서 자리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도록 했죠. 업무 집중 시간제 같은 제도로 근무환경 변화도 이끌어내려고 했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웠던 2021년에도 계양구 서운산단에 공장을 지었습니다. 다들 제 정신이 아니라고 했어요.(웃음) 힘든 상황에서도 앞날을 내다보고 투자했을 때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습니다.
▲창업까지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했을 무렵 신발로 유명했던 태화그룹이 절삭 공구를 제작하는 태화기계라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절삭 공구 중에서 엔드밀이 당시 유망 기술이라 외국 업체와 제휴를 맺기도 어려웠어요. 수출 측면에선 엔드밀 수익성이 제일 좋았습니다. 해외 시장을 뚫고 계약을 맺었는데 2년이 지나도록 납기일을 못 지켜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죠. 계약했던 바이어한테 미안해서 회사도 그만두고 나왔어요. 그래도 바이어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에 창업까지 하고 기술 개발에 매달린 거죠. 엔드밀로 시작해서 아이템을 하나씩 늘려갔습니다.
▲'양지원공구'로 부평에서 공장이 운영됐던 기억이 납니다.
-1981년에 사업자 등록을 하고, 이듬해 3월 청천동 공장 건물을 샀습니다. 6·25 때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조부모님이 인천에 사셨어요. 땅값이 싼 곳을 찾아서 김포도 가보고, 부천에도 갔다가 부평으로 왔죠. 1983년에 처음 미국으로 엔드밀을 수출했습니다. 수출액 25만 달러였어요. 직원 12명이 있었는데, 반년을 공장에서 살면서 밥 해주고 연탄 갈아주면서 시작했습니다. 100% 수출로 승부를 걸었죠.
▲몇 년 전 유럽행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기도 했죠.(웃음)
-제가 비행기를 1000만 마일 이상 탔어요. 코로나19 전까지는 한 달에 네 번씩 해외로 나갔고, 이달에도 세 번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이스라엘 출장도 잡혀 있어요. 현지 상황을 보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건 상관없이 갑니다. 바이어를 만나고, 전시회도 다니면서 시장 흐름을 알아야 하거든요. 1982년부터 이렇게 다녔으니까 비행 거리로는 항공사 직원을 빼면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거예요.
▲절삭 공구 종류가 어느 정도 됩니까.
-표준형으로만 10만 종류를 만듭니다. 사이즈도 여러 가지니까요. 그래서 정밀 기술이 필요합니다. 절삭 공구는 쉽게 설명하면 공작 기계에서 쇠를 깎을 때 쓰는 소모성 공구예요. 특히 엔드밀은 금형 전반에 쓰입니다. 구멍을 뚫는 '드릴'이나 나사를 가공하는 '탭'과 같은 절삭 공구 모두 와이지원은 세계 시장에서 매출 최상위권에 올라 있어요. 특히 엔드밀은 세계 1위입니다.
▲와이지원 이전에 엔드밀 시장을 이끌었던 나라는 독일이었나요.
-독일과 일본이 앞서 나갔습니다. 특히 일본에서 엔드밀을 생산하는 업체는 모두 굴지의 기업들이에요. 일본 대기업과 경쟁하는 겁니다. 2035년 전체 절삭 공구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각국에 사업 거점을 두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일 중요한 건 판로 개척입니다. 지금 해외 인력이 4300여명 정도 됩니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도 해외에 33개 사업장을 만들었어요. 가장 큰 공장은 중국 칭다오에 2곳 있는데, 수출용과 내수용이 각각 있습니다. 일부는 반제품으로 국내에 들여옵니다. 세계 시장에서 큰 흐름으로는 인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해외 사업장이 그렇지만 인도는 특히 현지화가 기본입니다. 재무 관리자(CFO)는 여기서 파견하지만 세일즈 측면에선 현지화가 필요하거든요.
▲절삭 공구 사업을 하면서 다른 분야로 확장하는 생각은 안 해보셨는지요.
-절대 안 합니다.(웃음) 땅을 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지만 자꾸 다른 걸 생각하면 절삭 공구 시장에서 세계 1등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인천테크노파크가 송도국제도시에 기업을 유치하면서 본사를 이전했지만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다른 일로 돈을 벌려고 하면 제품 경쟁력이 사그라집니다. 절삭 공구를 만들어내는 게 행복이고,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와이지원 비전도 '포 유어 배터 라이프, 글로벌 넘버원(For Your Better Life, Global No.1)'입니다. 직원들이 더 나은 삶을 산다는 전제 위에서 세계 최고가 된다는 것이죠. 그게 아니면 1등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담 신용석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국제협력특보
/정리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와이지원(YG-1)은 1981년 '양지원공구'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이듬해부터 인천 부평구 청천동 공장에서 절삭 공구인 '엔드밀'을 생산했다.
미국 수출을 시작한 1983년 25만 달러 실적을 올렸던 와이지원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며 지난해 매출액 5498억원, 영업이익 72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 규모도 2020년 3742억원, 2021년 4578억원에서 오름세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와이지원은 엔드밀 세계 시장에서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엔드밀은 자동차와 항공기 산업을 비롯해 금형 전반에서 정밀 가공에 쓰이는 절삭 공구다. 와이지원은 세계적 투자가인 워런 버핏이 주주로 투자에 나서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와이지원은 2012년 한국무역협회로부터 '2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2018년에는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산업통상자원부 선정 '일하기 좋은 뿌리기업', 인천시 선정 '인천 항공 선도기업'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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