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발달하고 사적 영역이 확대되면서 공공의 영역은 축소되고 시민들은 파편화되었다. 개인의 영역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시민들은 원자화되고 고립된 존재로 전락했다. 개인주의에 빠진 시민들은 광장에서 물러나 자신만의 은밀한 공간에서 자유를 탐닉하면서 정치를 잊어버렸다. 정치는 시민이 아닌 일부 잘난 정치인들의 전유물이 되었고, 체험하는 정치가 아니라 단지 구경만 하는 양상으로 변했다.
공사의 구분이 무너지고, 공적인 영역에서 객관적 기준이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문, 재산,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사적인 관계가 그것을 대체할 때, 시민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이렇게 부패가 만연하면 시민들은 정치에 주인으로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의 노예로서 수동적으로 대응한다. 정의와 공공성을 중시하는 시민적 덕성은 사라지고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도래한다.
불평등과 부패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적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는 공동체가 어느 한 계층에 의해 지배당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내야 한다. 공공선의 이념이 탄생하는 공간이자 시민적 덕성이 재생산되는 공간으로서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정한 법 제도와 공적 질서의 확립이 중요하다. 공화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와 대중 모두가 크게 변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가 가치관과 정체성의 차이를 극복하고 힘을 합칠 때, 비로소 공화주의는 실현될 것이다.
'87년 체제'가 성공했던 것은 학생, 시민, 노동자 등이 들고일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대한 변화의 압력 속에서 보수와 진보가 대타협을 했고, 그 결과 새로운 헌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헌법과 거기에서 비롯된 제도의 틀 속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확고한 이행이 가능했다. 정치의 역할이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수많은 비판에도 민주주의를 옹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것들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나눠서 보는 세계관이야말로 전체주의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비판하면서 열린 사회를 강조했던 칼 포퍼는 “우리는 민주주의자이지만 그것은 다수가 옳다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민주적인 전통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 중에서 가장 악이 적은 전통이기 때문이다.”라는 얘기로 민주주의를 옹호했다.
수많은 토착 비리에 연루된 범죄자로 추정되는 제1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기괴한 막말과 꼼수가 난무하는 방탄 국회 때문에 결국 한국 정치는 실종됐다. 개딸이라는 정체불명의 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훼손하며, 진영론에 놀아나는 판사들에 의해 나라의 법치까지 많이 무너진 상황에서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은 공허해 보인다. 그래도 대화와 토론이 가능한 성숙하고 품격 있는 민주공화국을 향한 국민의 마음은 꺾이지 않을 것이다.
/홍동윤 인천시 시민통합추진단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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