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백지화 한달, 표류하는 R2]

경제청, 케이팝 콘텐츠 시티 사업
2021년 대형 기획사와 MOU 체결

수의 계약 토지매각 검토 논란 촉발
제안공모·주민설명회 혼란 거듭
1년 9개월 만에 결국 백지화

김진용 청장 “특혜의혹…투자유치 어려워
경쟁입찰 매각, 오피스텔 늘어날 수도”
▲ 인천 송도국제도시 8공구에 위치한 'R2 블록' 부지 전경. /사진제공=인천경제자유구역청
▲ 인천 송도국제도시 8공구에 위치한 'R2 블록' 부지 전경. /사진제공=인천경제자유구역청

 “R2 블록 제안 공모 사업을 전면 백지화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지난달 23일 '케이팝(K-POP) 콘텐츠 시티' 사업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세간의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고, 주민 갈등이 엄존하며, 잠재 투자사 등이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사업 추진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이유였다. 2021년 11월 국내 대형 기획사들과 양해각서(MOU)가 체결된 지 1년 9개월여 만이었다. 송도국제도시 8공구 R2 부지에서 벌어졌던 '케이팝 콘텐츠 시티' 사업은 수의계약, 오피스텔 개발, 민간 사업자 등으로 논란이 옮겨붙었다. 인천경제청도 지난 7월 이후 제안 공모 추진, 주민 설명회, 사업 백지화 발표로 혼란을 거듭했다. 전면 백지화 이후에도 한 달이 지나도록 R2 부지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케이팝 시티' 구상부터 백지화까지

송도국제도시와 '케이팝'이 투지 유치 고리로 맺어진 건 양해각서에서 출발한다. 2021년 11월10일 당시 이원재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이 서명한 'K-POP 문화산업 클러스터 조성' 양해각서에는 국내 굴지의 기획사들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제이와이피엔터테인먼트, ㈜에프엔씨엔터테인먼트가 참여했다.

양해각서 뼈대는 케이팝 인프라를 확충하고, 문화 사업을 개발하는 내용이었다. 인천경제청은 행정 업무를 지원하기로 했다. 기획사들로 구성된 컨소시엄 대표 참여사는 케이에스씨홀딩스㈜였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케이팝 인프라 개발은 지난 7월 중순 민간 사업자 특혜 논란과 동시에 급부상했다. '케이팝 콘텐츠 시티'로 명명된 사업 부지가 인천도시공사(iH) 소유 R2 블록으로 점찍어지고, 수의계약으로 토지 매각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논란이 가열되자 김진용 인천경제청장은 지난 7월25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송도국제도시 8공구 R2 블록과 인근 B1·B2블록을 묶어 21만여㎡ 부지를 제안 공모 방식으로 개발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경제청은 설명자료를 통해 “사업자 제안에 대해 토지주인 인천도시공사에 의견을 묻는 공문을 보낸 것이며 아무런 정책 결정이 이뤄진 바 없다”고 덧붙였다.

제안 공모 방침에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았고, 결국 백지화로 이어졌다. 케이팝 전용 아레나(공연장 건립), 엔터테인먼트사 유치, 스튜디오 조성 등이 구상됐던 케이팝 시티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엇갈린다. 지난달 29일 인천시의회 본회의에서 장성숙(민주당·비례) 의원은 인천경제청을 겨냥해 “충분한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사업을 추진하다가 지역사회 혼란만을 남긴 채 백지화를 선언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진용 인천경제청장은 “양해각서 체결 자체가 수의계약을 염두에 두거나 전제로 한다. 수의계약을 통한 개발도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친다”며 “투자 유치 협상을 특혜 의혹으로 등식화하면 경제자유구역 활성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특혜 의혹” vs “투자 유치”

특혜 논란을 촉발한 수의계약은 경제자유구역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은 개발 사업에서 수의계약, 조성원가 이하 토지 공급 등을 허용하고 있다. 수의계약을 둘러싼 공방이 거듭되자 인천경제청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연세대·세브란스병원, 하나금융타운, 파라다이스시티 등도 수의계약 방식을 통한 투자 유치였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수의계약은 최고가 입찰이나 제안 공모 등 다른 토지 매각 방식과 달리 경쟁 과정이 생략된다. 투자 유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

수의계약에 부정적 여론이 떠오르자 인천경제청이 지난 7월25일 케이팝 시티 사업을 제안 공모 방식으로 전환한 행보도 이런 논란에 불을 지핀 셈이 됐다. 인천평화복지연대는 “인천경제청의 불투명한 사업 추진이 계속된다면 R2 사업은 특혜와 불공정 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제안 공모 전환, 그리고 백지화 이후에도 특혜 의혹이 계속된 배경에는 국외 출장 문제도 한몫했다. 지난 1월 김진용 청장을 포함한 인천경제청 공무원들이 미국 투자 유치 출장길에 올라 개발 업체 관계자와 만났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협상 자리에 있었던 유명 연예인은 2021년 케이팝 시티 양해각서 체결 당시 컨소시엄 대표사인 케이에스씨홀딩스㈜ 대표이사였고, 참여 사업자 구성이 바뀌면서 새로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인 케이씨컨텐츠㈜ 공동 대표이사도 맡고 있다.

인천경제청도 설명자료를 통해 협상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다만 “투자 유치 협상은 비밀리에 진행되고 자주 만나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는 현실을 강조했다.

김진용 인천경제청장은 “협상 과정에선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는 비밀 유지 의무가 있다. 투자자와의 협상을 '업자와 만났다'는 식으로 폄훼하면 정상적인 투자 유치 활동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R2 부지' 앞날, 여전히 안갯속

케이팝 시티 사업이 무산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간 R2 블록 개발은 다시 안갯속에 빠졌다. 축구장 22개 크기에 달하는 대지 면적,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입지 등을 고려하면 사업성과 공익성 측면에서 절충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케이팝 시티 추진 과정에서도 '오피스텔 난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송도랜드마크시티 지구단위계획'을 보면 R2 블록 허용 용도에는 문화·집회시설 등과 함께 업무시설로 오피스텔이 포함돼 있다. 인천경제청은 “R2 블록을 현재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공개 경쟁 입찰로 매각하면 토지가만 올려놓고 공익시설이나 기업 유치 없이 사업성을 위해 오피스텔만 9000실에서 1만2000실가량 조성하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R2 부지를 둘러싼 공방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송도국제도시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일영(연수구을) 의원은 “앞으로 유사 논란이 발생하지 않도록 국정감사를 통한 철저한 진상조사로 책임을 묻겠다”고 예고했다.

김진용 인천경제청장은 “특혜 의혹에 대해선 투명하게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국정감사나 인천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등을 거친 뒤에 개발 계획을 정비해서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인천도시공사 소유 땅...특별계획구역 지정

'케이팝(K-POP) 콘텐츠 시티' 사업으로 홍역을 치른 'R2' 부지는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8공구에 위치한다. 개발 부지를 구역 단위로 나누면서 'R2 블록'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8공구 공유수면 매립은 2013년 완료됐다.

말발굽 모양인 R2 부지 면적은 15만8905㎡에 이른다. 1필지로 이뤄져 있고, '송도랜드마크시티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일반상업용지로 결정됐다. R2 부지는 인천도시공사(iH)가 소유하고 있다. 10년 전인 2013년 인천시는 공유재산인 R2 부지를 5141억원으로 인천도시공사에 현물 출자했다. 인천도시공사 부채가 늘어나자 경영 정상화를 지원한다는 목적이었다. 당시 인천도시공사는 R2 부지 출자를 통해 부채비율이 기존 345%에서 300%까지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R2 부지를 놓고 '오피스텔 난립' 우려도 되풀이되고 있다. R2 부지는 민간 사업자가 주변 여건과 개발 현황을 고려해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상업용지라서 공동주택인 아파트를 R2 부지에 짓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업무시설인 오피스텔은 허용하고 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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