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시인(1916~1998)의 마지막 집필실이 잡초에 묻혀간다는 기사를 읽었다.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 집필실 소유권이 후손에서 타인으로 넘어갔고, 새 집주인은 철거를 원하는 상태라고 한다. 시인의 유품을 옮겨 보관할 예정이라지만, 한국문단의 거목이 남긴 공간을 이렇게 스러지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가.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줄 그런 태양(太陽)만이 그리우리.' <묘지송>은 시인의 데뷔작이자 대표시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 집필실은 태양이 그리울 게다.
시인의 고향은 안성이다. 읍내 봉남리(현 봉남동)에서 태어났다. 시인이 전쟁 후에 쓴 시 <고향>의 몇 구절들을 옮겨본다. '고향(故鄕) 이란다. 내가 나고 자라난 고향(故鄕) 이란다. …… 뜬 구름 돌아오듯 내가 돌아 왔거니, 푸른, 하늘만이 예전처럼 포근할 뿐, …… 한나절 빈 산에 목메어 본다. 어쩌면 나도 와서 묻힐 기슭에 뜬 구름 바라보며 호젓해 본다.' 제멋대로 인용하는 일이 무례인줄 알지만 이렇게라도 시인을 기억해야겠다.
“절벽이 아니라 무너져 내리는 별들이네./ 별들이 아니라 서서 우는 절벽들이네.// …… //절벽은 스스로/ 사랑의 뜨거움을 말하지 않네./ 절벽은 그 외로움/ 절벽은 그 분노/ 절벽은 그 내일에의 절망을 말하지 않네.// 절벽의 가슴속엔 쏟아지는 별의 사태,/ 절벽들의 가슴속엔 피와 꿈의 비바람,/ 절벽들의 가슴속엔 펄펄 꽃이 지네.// 어디에나 홀로 서서 절벽들이 우네.”(<절벽가(絶壁歌)>) “눈물이 더욱 더 맑게 하여 주십시요./ 땀방울이 더욱 더 진하게 해 주십시요./ 핏방울이 더욱도 곱게 하여 주십시요.” ('오도(午禱)')
박두진문학관은 안성시 보개면 북평리에 있다. 마지막 집필실이 위치한 오흥리 일대는 '박두진문학길'이다. 그렇다고 대시인의 마지막 꿈이 깃든 집이 헐리도록 손 놓고 있어도 되는 것일까. 이 세상은 어디든 시의 나라가 아니고, 시인들의 나라일 곳은 없을 지라도, 시인의 고향만은 시인의 나라를 꿈꿔야 하지 않겠나. 모든 시민이 시인이고, 그 시민의 자손도 역시 시인이 되는 그런 나라. 어떤 나라인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박두진 시인의 시 '시인 공화국'을 다시 읽어 보시라.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 두 곡을 거푸 듣는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해야 솟아라……”('해')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하늘은, 멀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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