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에 들어간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의사가 진짜 반영되는 국회가 구성될까 봐 겁이 났던 모양이다. 1972년 유신헌법은 유신정우회라는 해괴한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두었다.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대통령의 뜻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 방식으로 선출하도록 했다. 그것도 불안했는지, 1지역구에서 2인을 당선시키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여당인 민주공화당은 전국 모든 지역구에서 1등 혹은 2등으로 당선자를 냈다. 1973년 2월27일 제9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의 전국 득표율은 38.68%에 불과했으나,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제1야당인 신민당은 32.55%를 득표하고도 52석(전체의석의 23.74%)을 얻는 데 그쳤다.
제10대 총선(78년 12월)에서 민주공화당은 전체 득표에서 신민당에 1%포인트 지고도 145석(지역구 68석 + 유신정우회 77석)을 차지했지만 신민당은 이기고도 61석이 고작이었다. 여당이 패했음에도 제1야당보다 2배 반 가까이 국회 의석을 차지하는 정치제도를 민주주의라고 우기던 뻔뻔한 시절이었다. 지역구만 보면, 서울과 경기에서 서울의 단 1곳만 제외하고 두 거대 정당 후보가 동반당선 했다. 유신정권에 이어 권력을 잡은 신군부가 1981년 3월25일 실시한 11대 총선도 중선거구제로 치러졌다. 경기도 12개 선거구 당선자를 보면 딱 한 곳 빼고 전부 민주정의당과 민주한국당 동반당선이다. 유신정우회는 사라졌으나, 전국비례득표 1위 정당이 3분의 2를 가져가는 해괴한 규정에 따라 민정당은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총선 역사상 최고로 투표율이 높았던(84.6%) 12대 총선(1985년 2월12일)에서 집권여당은 사실상 참패했으나, 비례대표 배분 규정과 중선거구 동반당선 효과 덕분에 또 한 번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인천 지역구는 2곳 모두 동반당선이었고, 경기도 10개 지역구는 민정당이 모두 당선자를 낸 가운데 3개 야당이 동반당선자를 냈다. 9·10·11·12대 총선 결과를 보면 중선거구제는 독재정권의 가짜 민주주의 제도였다.
현재 국회 전원위원회에 회부된 선거제도 개편안 첫머리에 이른바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가 올라가 있다. 도시에서는 1개 선거구에서 3~5인을 뽑고, 농촌에서는 소선거구제를 하자는 안이다. 소선거제의 사표(死票) 방지 효과를 내세우지만, 특별한 방지장치 없이 도입되면 거대 양당의 나눠 먹기로 귀결될 가능성이 100%라고 단언할 수 있다. 선거제도 개편 논의는 대표되지 않는 소수 민의를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시작됐다. 이번에도 야합과 꼼수로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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