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빚에 관한 세상 말들이 허다하게 나돌지만 맥락은 결국 하나다. 도무지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 그러나 과부땡빚이라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기실 과부땡빚은 빌려주는 과부나 빌리는 이나 딱하긴 마찬가지다. 작고한 필자의 모친이 허름한 집안에서 네 형제 키우는 일도 그랬다. 구멍가계 외상장부와 일수아줌마에 대한 기억은 물론, 학비를 꾸기 위해 힘없이 집을 나서는 어머니 뒷모습이 여전히 선하다. 이런 풍경은 대부분 서민 살림살이에서 흔했으며,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빚 없는 살림이야 모든 이의 바람이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으니 말이다.
몇 년 새 '채무제로'라는 이종(異種)결합 낱말이 빈번하게 떠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현역 자치단체장들의 자랑스러운 실적으로 여기저기 나부낀다. 2016년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첫 사례다. 이후 경기도는 물론 용인시, 경기 광주시, 고양시, 양평군 등이 잇따라 합류했다. 전국 226 자치단체 중 거의 100곳에 이른다는 보도도 뒤따른다.
이처럼 채무제로가 정치인인 자치단체장들의 '치적'으로 소비되면서 부작용이 속출한다. 홍준표의 채무제로 치적은 공공의료 위축, 보조금 사업 축소, 투자사업 감축의 소산이란 점에서 일찌감치 예상됐던 일이다. 공공재정 운용을 질 아닌 양적 관점에서 보여주거나 보는 것도 문제다.
여러모로 서민 살림 어려운 때다. 빚이야 없을수록 좋겠다만, 그 통에 공공부문이 감당해야 할 몫을 줄이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 아울러 각종 공공서비스사업이나 보조금사업이 갖는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 비록 어렵더라도 빚이라도 내 아이의 미래를 열어준 우리네 이웃들처럼,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공동 과제 해결에 힘을 보태는 일이 좋은 정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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