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의 바다'에서 왔나, 명작 뒤 숨은 일등공신
▲ 인천 여성작가들이 북성포구 '태호네 횟집'을 찾았다. 왼쪽부터 양진채 소설가, 고제민 작가, 이설야 시인.

양진채·고제민·이설야… 인천 여성작가들의 비밀 아지트

 


"남몰래 와서 글썼는데 매립 소식에 영혼을 빼앗기는 기분"

 

 

 

 

 

 

 

 

 

 

 

인천의 북성포구는 '뒷자락'이 머물러 있는 곳이다. 하루를 온전히 밝히고 서서히 바다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일몰이 아름다운 곳이다.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이별을 마주하러 버릇처럼 찾는 이들이 있는 곳이다.

북성포구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지나야 만날 수 있다. 공장지대 뒤편에 있어 휑하니 인적이 드문 곳, 아파트단지 옆 스산하고 외로운 샛길의 모퉁이를 돌고 돌아 외지고 구석진 곳에 바다의 '끝자락'이 머물고 있는 곳이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그래서 인천을 그림으로 시로 소설로 담아내고 있는 여성 작가들이 나름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북성포구에서 자리를 같이했다.

지난달 '잊혀져가는 포구 이야기'로 북성포구, 화수포구, 만석포구, 소래포구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그림전시회를 가진 고제민 작가와 애관극장의 변사이야기를 그린 <변사기담>과 스마트소설집 <달로 간 자전거>로 유명한 양진채 소설가, 지난해 말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라는 첫 시집을 낸 이설야 시인이 그녀들이다.

포구와 섬 등 인천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엮어 <인천, 담다>라는 책도 발간한 고제민 작가는 힘들고 지칠 때 오면 위안을 주는 곳이 북성포구의 매력이라고 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너무 좋아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화실에 다니며 그림을 배웠어요. 미술로 예고와 대학에 가고 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있지만 작품활동을 거의 못하다 나이 40을 넘겨 다시 시작했어요. 굳어진 손의 감각을 찾기까지 3년이 넘게 걸려서 그린 첫 전시작품이 '북성포구, 노을에 나를 비추다'였어요. 그 당시 북성포구 '태호네 횟집' 1층 구석자리에 온 순간, 느낌이 팍 오더라구요. 인천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나하는 생각과 함께 나 자신이 투영되는 듯한 정서가 통하는 곳이구나 했죠. 지금도 북성포구에 와서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위로가 되고 위안을 받게 되요."

지난 10일 소래포구역 앞 복합문화공간 '마중물 문화광장 샘(마샘)'에서 6명의 다른 작가들과 함께 북콘서트 '인천, 다(多) 담다'를 함께 한 그녀들은 북성포구가 주는 정취와 분위기에 매료돼 자주 찾곤 한다.
'눈 설(雪)'에 '밤 야(夜)'라는 날 때부터 시인의 이름을 갖고 태어난 이설야 시인은 북성포구가 매립된다는 소식에 너무 안타까운 일이라고 아쉬워 한다.

"화수포구 주변에서 자라서 북성포구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알게 되니 여기가 숨어있는 보물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만의 비밀장소로 남들 모르게 혼자 오곤했지요. 밤에 느끼는 정취가 매력적이라 가끔 밤에 오기도 했구요. 저는 시 한편을 쓰려면 감정이 올 때까지 계속 와서 느끼고 남기기 위해 사진도 찍어놓고 그래야 하거든요. 근데 북성포구로 시를 쓰려는데 완성을 못하겠더라구요. 요즘에도 몇편을 써서 지우곤 했는데 맘에 와닿지가 않아요. 제게 너무 소중한 북성포구가 매립된다고 하니 영혼까지 매립되고 빼앗긴다는 느낌이에요."

양진채 작가는 <학산문학>, 이설야 시인은 <작가들>이라는 인천의 계간 문학지의 편집주간을 맡아 인천과 관련된 작업을 하며 고민을 풀어내는 공통점도 있다. 양 작가는 지금도 선상파시가 이뤄지는 곳인 북성포구는 관광자원화 해도 될텐데 굳이 매립을 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한다.

"다른 선배 작가, 시인들과 북성포구를 처음 왔을 때 배에서 새우를 파는거에요. 그때는 고깃배에 사다리를 놓고 내려가서 새우나 생선을 사서 올라오곤 했지요. 다음에 왔을 때는 병어를 샀는데 값도 싸고 물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여기만 오면 오늘은 뭐 좋은 생선있나 하며 기웃기웃 둘러보곤 했지요. 근데 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맞춰 와야해요. 물때표를 보고 만수위가 되기 3시간전에 와야 물이 차면 갯골을 따라 들어오는 배를 만날 수 있어요. 전국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고 아이들도 고깃배에 올라가보고 흥정도 할 수 있는 곳이죠."

이들 여성작가들은 '언니', '동생'이라는 호칭으로 친해질 필요가 없는 사이다. 그녀들이 여전히 북성포구를 찾는 이유는 한번 오면 다시 찾게 되는 작은 횟집에서 서로의 작품을 보고 느끼고 존중하며 자연스럽게 도란도란 추억을 더듬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일거다.




'맛보기' 만으로 배부를 한상차림 '코스메뉴'

 


'태호네횟집'에서는 다양하게 준비된 회를 취향에 따라 단품으로 주문해도 좋지만 회와 함께 너무 많다싶을 정도로 나오는 기본 상차림을 두루 맛보려면 코스메뉴를 권한다.

코스메뉴의 기본 반찬은 계절에 따라 구성이 다르지만 이날은 직접 담근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방풍나물과 호박찜, 삶은 강낭콩 등 각종야채에 전복, 멍게, 해삼, 간재미, 가리비, 석화굴, 밴뎅이 회, 병어회 등 싱싱한 회종류가 맛보기로 나오는데 맛만 보는 정도가 아닌 양이다. 상추와 미역줄기는 초고추장이나 막장과 함께 회를 싸먹게 준비했다. 갑오징어와 새우는 숙회로 데쳤고, 조개젓, 양념게장 등 젓갈류도 곁들였다.

특히 세발낙지는 호롱구이처럼 나무젓가락에 둘둘 말아 삶았고 우럭을 반건조로 말려서 찜을 했다, 허기를 달래주려 대나무밥이 기본차림으로 나오고 철에 따라 주꾸미, 전어, 아나고 구이 등이 추가된다.

이날의 주인공인 광어회가 나오자 '맛보기 회'들이 자리를 내주려 조금씩 상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회만큼 먹는 사람의 취향이 다양한 음식도 드문데 활어가 좋다는 사람, 선어가 좋다는 사람이 나뉜다. 연겨자를 풀은 간장, 초고추장, 다진 마늘과 고추를 곁들인 막장 등 찍어먹는 장도 사람마다 다르고 쌈을 싸서 먹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냥 회만 먹는 사람도 있다.

광어는 고단백, 저지방, 저칼로리로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어 건강한 사람부터 노약자까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어종으로 비린내가 없어 아이들도 좋아한다. 광어의 간에는 비타민 B12가 많이 들어있어 빈혈 예방에 효과적이고 간장질환이 있는 사람이나 당뇨병 환자에게도 좋다.

마지막은 병어조림이다.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가 제철인 병어에는 비타민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 돼, 성장기 어린이는 물론 회복기에 있는 환자의 영양식으로도 부담이 없는 흰살 생선이다. 양질의 단백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방 함량이 적어 성인병을 예방하고 체중조절에도 이로운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병어는 칼등으로 꼬리에서 머리 쪽으로 긁어 비늘을 제거한다. 가위로 지느러미를 자르고 아가미 쪽에 칼집을 내어 내장을 꺼낸다. 앞뒤로 3~4군데 칼집을 낸다.

감자와 무를 두툼하게 썰어 넣고 양파, 대파, 고추도 어슷하게 썰어 고추장, 간장, 다진 마늘, 맛술과 함께 물을 자작하게 부어 감자와 병어가 충분히 익을 때까지 끓인다. 고춧가루를 듬뿍 뿌려 칼칼하고 뜨끈한 병어조림 국물이면 누구라도 밥 한공기는 금세 해치울 수 있다. 1인 3만5000원.



바닷가 위 쇠말뚝 박은 '수상가옥'

 


갈매기 소리에 노을지면 금상첨화


북성포구에 있는 '태호네횟집'은 바닷가에 쇠말뚝을 박고 그 위에 집을 지은 수상가옥에서 짠내와 갈매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회를 먹는 곳이다.

바닷가의 일몰과 주변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가 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이 사진하는 사람들에게는 워낙 알려져 있어 흐린 날이나 맑은 날이나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한번 씩은 찾아 촬영을 하는 곳이다.

북성포구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횟집은 30년쯤 전부터 주변 동네 아주머니들이 포구 골목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대야에 횟감이나 생선들을 팔기 시작하다가 돈좀 모은 사람들이 가건물을 지어 횟집으로 변신해서 형성됐다.

'태호네횟집'을 포함, 6곳의 횟집이 남아있는데 북성포구 매립 얘기가 나오며 두 집은 아예 문을 닫았고, 두 집은 겨울철이라 손님이 뜸하자 영업을 잠시 접었다.

원래 '태호네'는 현재 영업을 하고 있는 차경임 대표의 조카 이름이다. 차 대표가 지금은 돌아가신 '형님'이 하던 횟집을 10년 전에 인수한 뒤 겨울에도 꾸준히 찾는 손님을 맞고 있다.

북성포구는 소래포구보다 규모는 작지만 고깃배가 드나드는 곳이다. 밀물 때 고깃배가 들어오면 바다에서 직접 잡은 신선한 횟감을 저렴하게 구입해서 횟집에 가져가면 횟집에서는 회를 떠주고 남은 뼈와 대가리로는 매운탕을 끓여준다.

"최근 북성포구 매립소식이 들리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구하나 자세하게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하다"는 차 대표는 이날 나온 광어회 접시를 상에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겨울에는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아 고깃배들이 작업을 나가지 않아요. 손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할 수 없이 양식횟감을 쓰지요. 3월이 되고 날씨가 풀리면 고깃배들도 다시 일을 하면 싱싱한 회를 맛볼 수 있을거에요."

바다에서 직접 잡아 올린 회가 아닌 양식회라도 북성포구라면 회맛은 다르지 않다.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부두를 바라보며 가족 또는 오랜 벗들과 함께 70~80년대 정취가 물씬 남아있는 북성포구 횟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술에 취하기 전에 분위기에 취하기 마련이다.

'태호네횟집'에서는 계절에 따라 광어, 우럭, 도다리, 농어, 민어, 병어, 벤뎅이, 준치 등의 각종 회를 맛볼 수 있다. 병어조림(사진)과 매운탕이 유명한데 3~4명 점심식사는 물론 저녁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이와함께 낙지볶음, 주꾸미볶음, 우럭찜, 우럭젖국과 벤댕이구이와 갑오징어도 많이 찾는다. 032-765-0916

/글·사진=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