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위원
문순태의 단편 <철쭉제>는 상위 지위의 남성이 거느리는 아래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전형적인 성폭력을 표현하고 있다. 순결, 정조의 이데올로기마저 금기 위반이 허용되는 지배 권력의 이중적 잣대가 존재한다. 노비의 신분으로 판돌이의 어미 넙순이가 박 참봉에게 당하는 성폭력은 오늘날 지배세력 혹은 우월적 지위로부터의 억압과 다를 바 없다. 오래 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지역 퀸즈시어터에서 '레미제라블'을 관람했다. 초연 후 30년이 지나 최장기 공연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개관 110년이 된 이 극장의 무대에 올려진 지도 14년이 흘렀다. 입구 사인판에는 '여전히 표를 구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는 광고문구가 뮤지컬의 유명세를 대신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의 옥살이를 겪는 장발장이 사랑한 여인 팡틴은 어린 딸 코제트를 키우기 위해 창녀가 된다.
1907년 퀸즈시어터와 같은 해 개관한 서울 종로구 묘동의 단성사는 레미제라블 초연 다음 해인 1986년 영화 <뽕>을 개봉해 흥행에 올렸다. 나도향의 <뽕>에 등장하는 아편쟁이 노름꾼 김삼보의 아내 한협집은 돈을 위해 정조마저 팔아먹은 여자였다. 김동인의 <감자>에 등장하는 복녀, 김유정의 <소낙비>에 등장하는 춘호의 아내는 남편 학대에서 밀려난 생계유지형 매춘의 주인공들이다. 단편은 부부 가치관의 혼동을 매춘을 매개로 담아내고 있으나 모두 극단적 성폭력의 상징이다.
오늘날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권력형 성폭력은 횡행하고 있다. 최근 최 시인, 서 검사 등의 성추행 폭로는 비뚤어진 남성중심 조직문화에 대한 고발이다. '미투'운동은 지속되고 지지되어야 한다. 이제 작품세계의 성폭력이 세상으로 기어나오지 않도록 방탕의 근원을 뿌리뽑아야 한다. 성을 노리개 삼은들 인간적 온기마저 빼앗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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