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통하던 고갯길 … 한때 수많은 공연의 중심지
▲ 싸리재는 중구 경동일대를 말하며 '싸리나무가 많은 고개'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의 싸리재 전경. 사진의 가운데 난 길이 싸리재다.
▲ 1900년대 초 일제강점기 당시 싸리재는 서울로 가는 시발점이던 길이었다. 사진 맨 앞, 갓을 쓴 채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햇살에 눈이 부신지 인상을 지푸리고 있다. 갓을 쓴 사람의 후손은 지금 인천에 살고 있을까?
겨울바람을 맞으며 싸리재를 넘어간다. 출발지점은 옛 경동파출소 앞. 건물 외벽이 누렇게 빛 바랜 파출소의 안은 텅 비어 있다. 파출소 옆으로 케이 월드(K-world), 아이 러브 독, 보석점과 피부관리소가 차례대로 늘어서 있다. 왼편으로 크로커다일, 청담한복, 스완빌리지 경동2차, 카페 티아모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 서 있는 건물 유리창이 겨울햇살을 눈부시게 반사하고 있다. 인천 중구 경동 238. 121년 전 '협률사'란 이름으로 경동에 자리잡은 '애관극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사람들을 들이고 내보내는 중이다.

5개의 상영관에선 '가려진 시간'을 상영 중이며, 12월엔 '아기배달부 스토크'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상영할 예정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간다. 콜라와 팝콘, 커피와 생과일주스 판매소가 관객을 먼저 맞는다. 고색창연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멀티플렉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상영시간은 오전 10시40분 부터 새벽 1시까지.

인천 중구의 유일한 단관인 애관극장은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인류에 처음 '활동사진'을 보여준 1895년 문을 연다. 서울 원각사(1902)보다 7년 앞서 정치국 씨가 세운 협률사에선 남사당패의 땅재주, 줄타기가 공연됐다. 이후 '축항사'란 이름을 거쳐 애관극장이란 이름을 가진 때는 1926년이다.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의미의 애관극장은 한국전쟁 때 화재로 소실된다. 1960년 9월 400석 규모의 극장으로 재개관한 애관은 동방, 시민관과 함께 개봉관으로 시민들을 만난다. 나훈아나 이미자 리사이틀과 같은 쇼도 개최했다. 애관은 그러나 1999년 멀티플렉스의 등장과 함께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4년 애관극장은 5개관 860석 규모의 멀티플렉스로 재탄생해 지금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애관극장을 나와 배다리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신라라사, 이수일양복점, 월드양복점, 서울양복점, 월드양복점, 제왕양복점 등 싸리재 고개를 넘는 동안 여러 개의 양복점을 지나쳤다. 간판만 남은 채 안은 텅 빈 곳도 눈에 띈다. 이 중 신라라사와 이수일양복점은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집이다. 그러나 상권의 이동과 기성복 시장의 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수일양복점 이수일(75) 대표는 "가게 2층이 사는 집이니까 그냥 열어놓고 있는 거예요. 오랜 단골이나 특이한 체형을 가지신 분들이 주로 찾아오지요."라고 말했다.

경동파출소에서 배다리에 이르는 싸리재는 잡화와 화장품, 포목점과 양화점 등 작은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장사를 하던 길가였다. 1970년대 이후 싸리재는 양복점, 양장점, 가구점, 웨딩 거리 등으로 변해왔다. 싸리재는 1930년대 경인국도가 준공되기 전까지 서울로 통하는 길목이었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려면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거나 가마를 타고 싸리재를 넘어야 했던 것이다.

싸리재는 한때 서울 대학로 못지 않은 소극장들이 연기를 불태우던 곳이기도 했다. 돌체, 신포아트홀, 배다리극장, 경동예술극장과 같은 소극장들에서 무수한 작품이 탄생했다. 소극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한 것은 1994년 구월동에 인천종합문예회관이 들어서면서 부터다. 경동4거리 기독병원 앞에 위치한 돌체는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지만 결국 2007년 터전을 남구로 옮긴다. 이후 '플레이캠퍼스'란 이름으로 새 단장해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시민들을 만나고 있다.

이 곳에선 매년 '싸리재 대동굿'이 열리기도 한다. 지난해 5월에도 동인천 길병원 입구 인형극장 뒤 공영주차장에서 '제20회 싸리재 대동굿 한마당'이 펼쳐졌다.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재현하고 중구민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며 중구가 후원하는 축제다.

개항장을 차지한 일본인과 중국인에게 밀려 밀려 조선인들이 넘던 싸리재. 이 오래된 길은 지금도 중구와 동구를 이으며,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사람들을 지나보내는 중이다.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