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의 전통 재래시장인 김량시장은 한 예술가에 의해 종이인형으로 묘사됐던 우리 부모님의 어릴 적 모습이 아직은 남아있는 곳이다. 김량시장은 특히 커다란 가마솥에서 금방 꺼낸 찐빵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어두운 조명아래 수북이 쌓여 있는 붉은 고추와 코를 진동하는 참기름 냄새와 그리고 늘 웃고 있는 돼지머리를 볼 수 있는 곳 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곳 시장에서 5일마다 서는 장날이면 어머니 손을 잡고 따라 나온 어린 아이가 눈을 떼지 못하는 엿장수의 신나는 가위질과 손주에게 군것질 거리라도 사주겠다며 양지 녘에 앉아 직접 캐온 봄나물을 늘어놓는 할머니들의 풋풋한 정을 느낄 수 있다.

 용인 김량시장은 새마을 운동이 한참 시작되던 지난 70년대 초반에 개설됐다. 그 이후 용인 서민들의 삶과 함께 피고 져 온 김량시장은 아직도 용인시민들의 애환과 정서를 곳곳에 간직한 채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용인시내 중심인 김량장동에 위치한 김량시장은 용인문화의 거리부터 술막다리까지 4천여평 부지에 밀집한 상점만도 200여개가 넘는다. 개장 초기에는 이천과 안성, 용인에서 곡물을 사고 파는 `싸전(쌀을 사고 파는 곳)"으로 불릴만큼 유명한 곡창지대의 대표적인 시장이었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설명이다.

 요즘은 곡물보다는 먹거리로 더 유명해진 김량시장은 듬성듬성 썬 순대와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는 찐빵과 만두, 커다란 철판에 지글지글 소리내며 노랗게 익어가는 파전이 지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용인 김량시장에서 13년째 순대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아주머니는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돼지머리를 다듬고 내장을 훑어 순대를 만들면 아침 해장 손님부터 저녁 퇴근길 직장인들까지 쉴 틈이 없었다고 말한다.

 비록 좁은 골목길에서 돼지 내장을 다듬다 보니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는 손님들도 있겠지만 뚝배기에 한그릇에 푸짐하게 담긴 순대국밥 맛을 본 손님들은 다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그리고 40년간 찐빵만 만들었다는 찐빵 아저씨의 찐빵 맛도 이곳을 한번 찾은 손님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명물이다.

 이 밖에도 이곳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시장이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며 그 옛날 어머님 손을 잡고 따라나섰던 빛바랜 추억과 향수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곳 시장 상인들은 시장의 모습이 예년과 사뭇 다르다고 말한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이곳 김량시장은 인삼과 낙화생, 동동주 그리고 여러 곡류를 사려던 사람들로 늘 붐볐는데 지금은 대형할인점에 가려 매상이 예전에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나마 5일마다 서는 장날에 조금 예전 추억과 향수를 그리는 노인들과 찬거리를 사려는 인근 주민들만이 이 곳을 찾을 뿐이다.

 시장 한 모퉁이에 생선장사를 하는 김모씨(54)는 “요즘은 대목도 단골도 없다”며 “시장 옆에 대형마트가 생긴 이후로 매출액이 70%나 줄었다”고 푸념했다.

 김씨는 “그나마 장날이나 돼야 손님이 조금 있을 뿐”이라며 “이마저도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사람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게를 임대해 장사하는 김씨로서는 임대료조차 내기 힘든 실정이다.

 이곳에서 20년간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모씨(52)도 사정은 마찬가지. 근처 대형마트에 20년 단골 마저 뺏겼다는 이씨는 “시장에 고추 팔러 자동차를 가지고 와서 몇만원씩 하는 딱지를 떼이고 가면 누가 다시 오고 싶겠냐”며 “주차시설이 완비돼 있고 셔틀버스를 운영하는 대형마트로 손님들이 발길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씨처럼 많은 시장상인들은 시장에 가장 시급한 문제를 주차시설과 화장실 등 부대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에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노점상인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재래시장을 활성화돼야 된다고 입으로만 떠들지 말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고 시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더욱이 최근에는 용인에 급격히 늘고 있는 아파트와 도시화 물결로 대형 쇼핑센터만 늘고 자칫 김량시장과 같은 재래시장은 그 자취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그래도 아직 시장에 들러 `사람 사는 모습이 이런 것이다"하며 함께 나온 어린 아이에게 옛 것을 일러주는 부모도 간혹 눈에 띈다.

 가끔 김량시장을 찾는다는 박순현씨(34^용인시 운학동)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깔끔한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를 선호하지만 조금 다리 품을 팔면 재미있는 구경도 하고 즐겁게 쇼핑을 할 있다”며 “가끔은 재래시장을 찾아 빛 바랜 추억과 향수를 꺼내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고 말했다.

〈용인=지건태기자〉 guntae@inch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