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연 수필가
▲ 김사연 수필가

'김영란법'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청탁금지법'으로 불린다.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은 국무회의에서 '공정사회 구현, 국민과 함께하는 청렴확산 방안'을 보고하며 입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2010년의 스폰서 검사, 2011년의 벤츠 여검사 등 공직자의 부정비리가 연이어 터졌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2012년 8월,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하면 형사 처벌을 받는 내용의 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법무부 등 정부부처의 반대가 심해 1년 뒤에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법의 적용대상이 광범위하고 위헌 소지가 있다는 의원들의 비판이 심해 상임위원회에 법안을 상정하는 데만 4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2014년 4월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관피아(관료+마피아)라는 여론은 국회 본회의에서 김영란법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 법은 이달 22일까지 입법예고가 끝난 후 7월 중순쯤 시행령 안에 불합리한 규제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 국무조정실로부터 규제개혁 심사를 받게 된다. 이어 법제처 법제심사와 차관회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8월 중순쯤 시행령이 확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확정된 시행령 안은 9월28일 법 시행과 함께 효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 내용은 공직자가 3만원 이상의 식사,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받으면 과태료 처분을 받고 시간당 100만원 이상의 외부 강연료를 받지 못한다는 규제 사항이다. 문제는 애당초 고위공직자를 겨냥했던 대상이 원안에 없던 유치원 임직원, 사학재단 이사진,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 등 민간영역까지 확대돼 직접적인 당사자만 200만명이 넘고 배우자까지 포함하면 40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서울 소공동 포스트타워에서 김영란법 시행령 입법예고안 공청회를 가졌다. 토론자로 나선 농업계 대표들은 법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어려운 현실을 감안해 농축산물의 예외 적용을 강력히 주장했다. 김홍길 한국농축산연합회 운영위원은 농업계가 국익을 위해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양보한 상황에서 김영란법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호소했다.

반면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농축산업계가 고액의 상품 구성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가 있고, 산업의 진흥을 위해 생산적인 국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송준호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상임대표는 미국은 20달러(2만4000원), 일본은 5000엔(5만4000원)으로 우리보다 엄격하다며 농축산업계를 비롯한 피해 예상업계는 민간소비를 진작하는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모 부장검사가 회사에서 빌려준 돈으로 구입한 주식의 차액으로 122억원을 벌고, 부장검사 출신의 모 변호사가 청탁비로 2회에 걸쳐 총 5억원을 받고 전관예우로 한해 100억 원을 벌었다는 방송 보도를 접하며 농축산인들은 허탈감에 빠져있다. 누구는 벤츠 승용차를 선물을 받고 수억 원대 돈뭉치를 주고 받는데 자신들이 생산한 과일·고기·꽃 선물 포장은 5만원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김영란법 때문이다.

우리나라 농축산물의 40%는 구정이나 추석 명절 대목에 집중적으로 판매된다. 2014년을 기준으로 사과 생산량은 47만5000t(9369억 원)인데 그 중 19만 t(3748억원)이, 배는 30만 t(2618억원) 중 21만 2100t(1833억원)이 명절에 판매됐다. 이 중 5만원의 상한선을 넘는 선물 포장은 과일이 50% 이상, 인삼은 70% 이상, 한우는 98% 이상이어서 한국과수농협 연합회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사과와 배의 소득 감소액이 최대 1583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화훼시장 역시 지난 2003년 공무원행동강령으로 선물을 3만 원 이하로 제한해 큰 타격을 받은 경험이 있듯이 5만원 이하로는 경·조사 화환은커녕 마음을 전하는 축하 난화분조차도 보낼 수 없어 연 7000억원 이상의 피해를 예상하고 있다.

김영란법으로 농축산물의 전체 소비가 5~10% 줄었을 때 농가는 실제 가격에서 30~40%의 타격을 받게 된다. 이 수치는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개방 파고보다 더 큰 피해이며 그 동안 어렵게 쌓아온 농축산업 기반이 붕괴될까 우려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처럼 왜 일부 고위층의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때문에 농축산 농가들이 애꿎은 피해를 당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법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에 김영란법 입법에 앞서 농축산인의 입장을 재고해주기를 다시 한 번 농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곡히 당부한다. 청탁금지법은 과일 한 상자의 가격을 규제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 아니라 사과나 굴비상자에 돈을 넣어 보내는 특권층의 비리 척결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김사연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