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시내 도심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전곡재래시장은 6·25가 끝난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시장이다. 20여개소의 노점상이 옹기종기 모여 귀퉁이에는 쌀전과 장터국수가 자리하고, 늘어선 길따라 국화빵, 좀약, 산나물을 뜯어다 파는 아낙네가 좌판을 벌이면서부터였다.

 이렇게 시작된 전곡재래시장은 이후 취급물품에 있어서도 식품, 의류, 정육, 건어물 등 다양한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점포수도 200여개로 급격히 늘어나 지난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변 일대가 큰 상권을 형성하며 호황을 누려 왔다.

 현재는 모두 8천5백여㎡ 부지위에 시장내 80여 점포를 포함, 주변상권까지 240개소의 상인들이 상행위를 하고 있으나 변변한 번영회조차 제대로 결성되지 못하고 친목회 단체가 있을 뿐이다.

 점포들 역시 낡고 허술한 목조건물로 시장내에서 생활하는 상인들은 항상 화재위험의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형유통업체가 곳곳에 생겨나면서 가뜩이나 취약한 재래시장의 존폐가 위협을 받아 재래시장의 상권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그나마 먹거리가 위치한 일부 점포만이 시장으로서의 맥을 이어가는 실정이다.

 연천지역은 임진강과 한탄강이 서남쪽을 지나면서 고랑포 등 포구를 중심으로 상업과 장시가 발달했었다. 수로를 배경으로 한 "차탄장"에서 신작로와 철도의 등장으로 "대탄장"이 중심을 이루더니 교통(경원선)의 발달로 장시들이 성장한 것이다.

 전문시장이 없는 농촌지역에서 재래시장은 주민들에게 생필품을 공급하는 주요 보급로로서 훈훈한 정을 나누는 사교장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말아먹는 국밥에다 곁들인 막걸리속에서 정담이 넘치고 어쩌다 보이지 않는 이웃이 있으면 궁금해하며 가내의 소식을 두루 전하던 장소가 시장터였던 것이다.

 하모니카를 입에 물고 북을 치며 약을 파는 약장사. 지게를 등에 지고 소리를 질러대며 길을 재촉하는 지게꾼 등 물건을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이 뒤범벅이 돼 북새통을 이루지만 활기가 있어 사람사는 곳임을 느낀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우리네의 정취를 느끼고 향수를 달랠 수 있는 모습은 아득히 먼 옛날의 이야기로 회자될 뿐이다.

 재래시장이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며 구시대적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이유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데 옛날식 그대로만을 고집하면서 가공된 인스턴트식품에 설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전곡재래시장과 더불어 전곡과 연천읍에서 매 4, 9일과 2, 7일 열리는 민속 5일장은 도로와 상점사이 인도에 또 다른 전(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좌판)들이 펼쳐진다.

 전곡버스터미널을 사이에 두고 택시정류장과 농협군지부까지 300m쯤 되는 인도를 따라 형성된 전곡 5일장이 서면 거리는 활기가 넘치기 시작한다. 약 20여년 전에 형성된 현재의 장터에서 좁은 도로를 마주 하며 쭉 펼쳐진 전에는 시골장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놓여 있다.

 반찬류 젓갈 건어물 과일 어물 야채 장류 침구류 옷 죽제품 곡물. 약초 액세서리 화초 시계 각종 생활용품 군것질거리 등 크지 않은 장터에 정말로 많은 것이 나와 있다.

 옛 장터인 장옥골목에는 옷이나 야채, 곡물 등을 파는 장이 서는데 대개 60세가 넘은 상인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수십년간 장을 돌아다닌 노년층으로 지금은 거의가 공산품을 팔고 있다. 반면, 젊은 상인들은 야채 젓갈 어물 같이 신선도를 요하는 것들을 취급하며 부부상도 가끔 눈에 띈다.

 넓은 장터나 장옥이 따로 없는 연천 전곡장은 기존 상점앞에 전을 펴기 때문에 상점주인과 마찰이 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상점주인이 취급하는 품목과 겹치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장날에는 점포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라 여기기 때문이다.

 장터의 중앙에 자리잡은 의류아저씨는 전곡장의 터줏대감이다. 장에 나온지 25년. 그동안 옷장사해서 자녀 2명을 공부시키고 먹고 살았다. 바로 옆에서 뻥튀기장사 하는 상인도 마찬가지. 나이든 상인들의 모습에서 쇠퇴해 가는 5일장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장터국밥이란 말이 있듯이 이들 장에는 영락없이 먹을 것이 많다. 수구레와 돼지껍데기, 막걸리, 순대, 국수 등 다양하다.

 칼국수 장사만 한 10년했다는 아주머니는 장이 서는 전날 밤에는 반죽을 하느라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한다며 1천5백원하던 값을 손님들이 너무 싸다고 해 지금은 3천원을 받고 있단다.

 사회가 근대화되면 될수록 재래시장과 같은 민속장은 필요성과 중요성이 낮아져 그 수가 감소하거나 쇠퇴하지만 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활 관습 때문에 이용자가 많은 지역의 정기시장은 그래도 존속된다고 상인들은 말하고 있다.

〈연천=강상준기자〉 sjkang@inche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