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vs 대호]

2015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연말 극장가엔 천만배우를 내걸고 두 대작이 맞붙었다. 히말라야 에베레스트길에 오른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감동실화 영화 '히말라야'와 조선 최고의 명포수로 이름을 떨친 천만덕의 이야기 '대호'가 같은 날인 지난 16일 동시에 개봉했다.

탄탄한 연기파 배우 황정민과 최민식을 필두로 한 두 영화는 각기 다른 스토리로 관객몰이에 나선다.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졌지만 전혀 다른 코드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히말라야 :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 이야기

"기다려, 우리가 꼭 데리러 갈게."

영화 '히말라야'는 해발 8750미터 설산을 등반하며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원정대의 이야기다.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그들은 하산 도중에 조난 당한 동료들을 찾기 위해 어떤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돌아오지 않는 도전을 이어 나간다.

빙벽에 매달리거나 눈사태에 추락하는 등 보는 이들마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위험천만한 등반 장면이 생생하게 연출되고,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의 강풍과 눈보라 속 비박장면은 관객들을 압도한다.

영화 속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의 장엄하고도 화려한 풍광은 아찔함을 더한다. 히말라야 14좌 고지를 차례로 오르는 엄 대장과 원정대의 모습에서 우리는 극한 상황 속에서 한계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와 절실함을 보게 된다.

엄 대장과 원정대는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그 험한 곳에서 외로이 누워있는 동료들과 함께 내려오는 것이 엄 대장의 목표이자 꿈이다. 그래서 그는 '정복'이라는 말을 아낀다. 허락해준다면 잠시 머물다 내려오는 곳, 엄 대장에게 산은 그런 곳이다.

다같이 머물다 내려오자고 약속 했지만 산은 그들의 바람을 허락하지 않는다. 8000미터 고지의 세찬 바람이 발길을 붙잡고, 그 안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끈끈한 동료애는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다. 영화는 엄청난 에베레스트에 맞서는 그들의 도전이 아니라 어려움에 봉착한 서로를 이끌고 붙들어주는 인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

영화속에서 엄 대장은 산에 오르는 것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극한에 상황에 서면 현실에서 보지 못했던 가면을 벗은 진짜 자신과 맞닥뜨리게 된다고 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나 자신'보다 '우리'가 우선인 엄 대장과 원정대의 모습은 오늘날 만연한 개인주의에 물든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또한 그들의 계속되는 도전은 거대한 자연 앞에 선 한없이 작은 인간의 존재, 함께 사는 삶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마치 실제 원정대인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는 감동의 깊이를 더 한다. 배우 황정민은 엄홍길 대장의 눈빛과 쉰 목소리 하나 하나를 생생하게 묘사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황정민 외에도 정우, 조성하, 김인권, 라미란 등 원정대 모두 실제 인물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극적인 감동을 만들어 낸다.

124분의 러닝타임동안 아름다운 설경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애처로우면서도 따듯한 그들의 도전은 계속된다.감독 이석훈. 드라마. 124분.

▲대호 :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 이야기

"어느 산이든 산군(山君)은 잡는 게 아니여."

영화 대호도 설산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915년 겨울, 지리산 한 자락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일제강점기 조선을 배경으로 범포수들이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 지리산 산군 대호를 사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개봉 전 호랑이를 잡는 포수의 영웅담 정도로 예상했지만 영화는 생각보다 무겁고 관객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한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과 전체 몸길이 380㎝에 몸무게 400kg의 거대 호랑이와 맞서는 포수들의 살벌한 모습 뒤에는 자연의 섭리에 대한 지배로 이어지는 인간의 욕망이 깔려있다.

호랑이로 대변되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이 영화 전반에 짙게 담겨 있다.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삶의 태도와 대비해 보여 지는 그릇된 욕망의 형태는 화를 불러일으키는 원흉이 된다.

지리산의 마지막 호랑이 대호가 바위 위를 뛰어 다니며 포효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 포수를 해치는 모습에서는 살벌함과 처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영화는 대호라는 호랑이를 공격성과 인간적 감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 표현했다. 포수 천만덕과 대호의 대결, 심리적 교감은 여타 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새로운 코드로 다가온다.

극중 천만덕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의 연기는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호랑이와 견줄만한 용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살생의 업보를 지고 끊임없이 고통 받으며 살아가는 범포수역을 생생하게 연기하며 다시 한 번 배우 최민식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영화 속 대호는 100% CG로 탄생했지만 달려드는 호랑이의 눈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응시해 사냥하는 실감나는 그의 연기는 영화에 몰입도를 높인다.

아버지와 포수로서의 천만덕의 삶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듯 위태롭고, 영화 전반에서 보여주는 아들 석에 대한 사랑과 서로를 생각하는 부자의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139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눈 덮인 겨울 산의 모습과 광활한 산을 헤매는 포수들, 귓가를 맴도는 지리산 대호의 거친 숨소리 삼박자가 관객들을 지리산 한복판으로 데려다 놓을 것이다. 감독 박훈정. 드라마. 139분.


/김혜민 기자 khm@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