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폭포수 "대자연의 함성"

 2000년 6월6일 (화)

 오늘은 도강언을 떠나 북서쪽에 티베트족 마을이 9개 있는 구채구(九寨溝)로 가는 날이다. 또 오늘은 음력 5월5일 단오(端午)이다. 아침 식사 때 쩡쯔(蒸子)라는 찹쌀 주먹밥을 대나무 잎에 싼 것이 나왔다. 중국에서는 단오에 이것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아침 7시50분 도강언을 떠나 약 20분 후, 민강 대교를 건넌 다음에는 민강(岷江)을 오른쪽에 보면서 상류를 거슬러 올라갔다. 오전 8시45분 "소수민족 자치구" 입구를 지나고 30분 정도 올라가니 타르초가 처음 나타났다. 티베트족 마을이다.

 오전 11시15분에 문천(汶川)에 도착하니 고도는 해발 1,360m이고 길은 점점 험해졌으나 계속 민강 상류를 거슬러 올라갔다. 강 양쪽 산에는 계단식 밭이 나타나고, 이 밭에는 산초나무와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강가의 민가에는 소수 민족들의 마을이 가끔 나타나고 집들은 초라하나 집집마다 위성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이 곳은 산초와 사과의 산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오후 12시15분 무현(茂縣·1,600m)에 도착했다. 이 부근에는 강족(羌族)이 많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미얀마-티베트어족 계통의 말을 하고 있다. 이들은 불교도는 아니며 태양 등 자연신을 숭배하고 있다고 한다. 이 지방에는 티베트족 45%, 강족 24%, 회족(回族) 10%가 살고 있다. 오후 2시20분에 교장(較場) 근처의 고개에 오르니 고도는 2,350m나 올라갔다.

 오후 2시55분, 쌍계풍경구(2,540m)에 도착했다. 이 곳은 1933년에 일어난 진도 7.5의 지진으로 생긴 쌍계해자 라는 아름다운 지진호(地震湖)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6,865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호수는 이것 외에 10개가 더 있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다. 잘 눈에 띄지 않고 불결하다. 그런데 성도-구채구간에는 "사설 화장실"인 위생 치소가 많다. 중국 정부는 누구나 "사설 화장실"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도록 허가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일회에 0.5위안(약 70원) 받는다. 오후 5시20분, 비 내리는 송번(松藩, 2,730m)에 도착했다. 성도에서 이 곳까지 민강을 따라 335㎞ 올라왔다. 송번은 옛날에 죄인을 귀양 보내던 곳이라고 하니 얼마나 깊은 산골인지 짐작이 간다. 약 20분 더 올라가 천주사진(川主寺鎭)에 왔다. 이 곳에서 동쪽으로 54㎞ 가면 황룡(黃龍)이다. 황룡은 "에메랄드 그린"의 테이블과 같은 연못이 "계단식 밭"같이 층층으로 3,400여 개나 연달아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들의 이번 여행에서 황룡으로 가는 것은 빠져 있어, 아쉽지만 그냥 지나갔다.

 오후 6시15분, "본 敎"의 큰 사원인 "가민 사원(3,200m)"에 도착했다. 7세기에 본격적인 불교가 티베트에 들어오기 전까지 티베트 고원에서는 "샤머니즘"에 의한 자연 숭배가 민간 신앙에 정착되어 있었다. 이것이 티베트의 민족 종교인 "본 敎"이다. "가민 사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보통 불교 사원과 다를 바 없었으나 卍(만)자의 방향이 반대로 되어있고 스투퍼(불탑)나 사원을 돌 때도 불교와는 반대로 왼쪽으로 돌고 있었으며 마당에는 엄청난 양의 향불이 타고 있었다. 이 부근에는 "본 敎"의 사원이 많다고 한다.

 오후 6시55분, 오늘의 제일 높은 고개(해발 3,380m)에 올라왔다. 이 곳이 민강(岷江) 원류의 시발점이다. 성도가 해발 500m이니 표고차 2,880m나 올라왔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50m 앞이 보이지 않고 차내 기온은 28℃까지 올라갔다. 오후 8시에 구채구의 당중(棠中) 대주점(2,100m)에 도착했다. 도강언과 구채구간의 험한 길, 380㎞를 12시간10분 걸려 달려왔다. 전에는 지금보다 길이 나빠 하루에 올 수 없었다고 한다.

 2000년 6월7일 (수)

 오늘 하루는 구채구(九寨溝)를 관광하는 날이다. 구채구는 성도의 북쪽에 있는 민산(岷山) 산맥과 만산(萬山) 사이에 있는 약 31㎞나 되는 깊은 계곡의 주위에 있는 200만평의 자연보호 구역으로 1992년에 "세계 자연유산"에 등록된 곳이다. 9개의 티베트족 마을이 있어 구채구라고 부르고 있다. 이곳은 해발 2,000~4,500m의 높은 곳에 인적미답의 원생림과 환상적인 호수가 100개나 산재해 있는 비경이다. 한편 한약재의 보고이기도 하고 야생동물들의 서식지이다. 모두 보려면 7~10일이나 머물러야 하나 우리들은 하루에 보기로 했다.

 이 곳에는 300대의 셔틀 버스가 수시로 공원 안을 돌아다니므로 그것을 이용하면 되나 우리들은 전용차를 사용했다. 공원 안에는 Y자를 거꾸로 놓은 것 같은 길이 있고 중간 지점인 낙일랑(諾日郞·2,400m)까지 13.8㎞를 수정구(樹正溝)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 곳까지 로위해(蘆葦海), 화해해(火海海), 와룡해(臥龍海), 수정군해(樹正群海·2,250m), 서우해(犀牛海)라는 아름다운 강, 호수, 폭포가 이어진다. 이 곳의 해(海)라는 것은 호수라는 뜻인데 모두 호수는 아니고 물이 흐르다가 고여 있는 곳도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이 물은 백수강(白水江)의 원류이며 중경에서 장강(長江)에 합류하는 가릉강(嘉陵江)의 상류에 해당된다. 우리들은 걷기도 하고 가끔 차를 타기도 하면서 이 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다. 한참 후 티베트 인의 마을이 나타나기에 들렀더니 스투퍼(불탑)의 행렬이 나타나고, 그 주위에는 수 백 개의 타르초가 세워져 있다. 또 다리 양옆에도 타르초가 세워져 있다. 다리 옆 정자의 처마에는 "가타"(흰 명주 스카프)가 많이 걸려 있다. 이 곳은 중국이지만 티베트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수많은 늪, 호수와 폭포가 아름답다.

 낙일랑을 지나 구채구에서 제일 고도가 높은 장해(長海·3,103m)까지 17.8㎞를 칙사규구(則査圭溝)라고 하며 하계절해(下季節海), 상계절해(上季節海), 오채지(五彩池) 등이 있다. 소나무, 삼나무, 대나무가 울창한 숲을 지나 장해에 오니 호수 위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있다. 야크들은 비닐이 뒤집어 씌워진 채 꼼짝도 않고 앉아있다.

 장해를 떠나 돌아오는 길에 약 1㎞ 가니 차도에서 50m아래에 파란 물의 오채지가 있었다. 호수에 파란 잉크를 부어 넣은 것 같다. 오채지의 물은 유난히 파란빛이고 물 속에 고사목(枯死木)이 가라앉아 있다. 조선족 가이드 이정희양이 설명하기를, 이 나무들은 나중에 "돌로 변해 버린다"고 한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의아해 했으나 곧 그 이유를 알았다. 오채지의 물은 많은 석회석이 용해되어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나면 고사목에 석회가 달라붙어 "석회석 나무"가 되어 버린다. 이 나무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

 일단 낙일랑에 돌아왔다가 오후에 "거꾸로 된 Y자"의 마지막 가닥의 길을 갔다. 이 길을 일칙구(日則溝)라고 하며 진주탄(珍珠灘)폭포, 금령해(金鈴海), 오화해(五花海), 웅묘해(熊猫海), 전죽해(箭竹海), 천아해(天鵝海·2,900m), 분경탄(盆景灘) 등 수없이 많은 명소가 있다. 오화해도 새파란 물과 물 속에는 석회석으로 피복되어 영원히 썩지 않는 나무가 있고 웅묘해는 이 부근에 많이 살고 있는 "팬더 곰"이 물을 먹으려고 오는 호수다.

 조금, 시간은 늦었지만 원시림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산사태 때문에 길이 막혀 버려 되돌아갔다.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 하여 매우 불편했으나 오히려 맑은 날에는 볼 수 없는 신비스러운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저녁에 티베트 민속 무용을 보았다. 3일 전 티베트의 체탕(澤當)에서 본 것과 같이 동작이 빠르고 용맹스러운 춤이 많았으며 의상은 매우 화려하였다. 2시간이나 계속된 공연 끝 무렵에 관람객도 참여한 대나무 끌기 게임이 있었으며 세 사람이 상을 받았다. 티베트에서 온 사람, 상해에서 온 사람도 있었는데 마지막 사람은 놀랍게도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온 관광객이었다. 나는 중국인이 부러웠다. 중국과 대만은 이렇게 서로 왕래하고 있었다. 우리와 북한은 언제쯤 이렇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