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티베트의 체탕(澤當, 해발 3,550m)을 떠나 라싸의 "콩가 국제공항"에서 항공편으로 중국 사천성의 성도(成都, 해발 500m)에 왔다. 공항에는 조선족 가이드 이정희양이 마중나와 있었다.

 성도라고 하면 삼국지로 잘 알려진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도읍이었던 곳이다. "촉으로 가는 길은 청천(靑天)으로 오르는 것 보다 어렵다"라고 이백(李白)이 읊은 것처럼 성도는 예로부터 산과 산에 가로막힌 곳으로 2200년 전의 주대 말기(周代末期)로부터 여러 왕조가 이 곳을 도읍으로 정했다. 또 성도는 땅이 비옥하며 산물이 풍부하고 "마파두부" 등 사천 요리로 우리들과는 친숙한 곳이다.

 먼저 무후사(武候祠)로 갔다. 무후사는 촉한의 왕, 유비현덕과 재상, 제갈공명의 묘와 사당이 있는 곳이다. 공명전에는 제갈공명 상이, 유비전에는 유비 상이 있는데, 그 옆 건물에는 관우, 장비 등 문관과 무장 28명의 상이 서 있었다. 유비는 병에 걸려 장강(長江, 양자강) 강가의 백제성(白帝城)에서 숨을 거두었다. 지난 1997년에 배를 타고 장강을 내려가다 백제성에 들른 일이 있었다. 그 때 백제성의 탁고당(託孤堂)에서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두 아들과 국사를 부탁하는 장면의 소상을 본 생각이 났다. 유비전에는 악비(岳飛)가 쓴, 제갈공명의 "전 출사표(前出師表)"의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귀국하면 삼국지를 다시 한 번 읽어 봐야겠다.

 무후사를 뒤로하고 성도에서 북서 65㎞거리에 있는 도강언(都江堰)으로 가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도강언은 2200년 전의 수리 시설이다. 촉(蜀)의 군수 이 빙(李氷)의 지휘하에 외강(外江)과 내강(內江)을 가르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시작됐다. 이 공사는 아들, 이이랑(李二郞)이 계속해서 추진했으나 준공된 것은 그가 죽은지 수세기 지난 다음이었다고 한다. 이 수리 시설이 준공되었으므로 매년 민강(岷江)이 범람하던 것을 막고, 비가 오지 않는 계절에도 성도 평야에 물을 댈 수 있게 되어 성도는 비옥한 땅이 되었다.

 어떤 책에는 이 수리 시설을 2200년 전의 "댐"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이 수리 시설은 "댐"이 아니고 분수어취(分水魚嘴)라는 인공 섬을 만들어 외강(外江)과 내강(內江)으로 물이 갈라져 들어가게 하였다. 또한 비사언(飛沙堰)이라는 수중보(水中堤防)를 만들어서 내강에 토사가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으면서 외강과 내강에 유입되는 수량을 조절하고 보병산(寶甁山)을 깎아내어 취수구를 만든, 대규모 수리 시설이다. 외강은 장강까지 이르는 길이 700㎞의 민강이며 내강은 성도 평원에 농업 용수를 보내는 관개용 인공 수로이다. 도강언의 동쪽 기슭에 이부자(李父子)의 덕을 기리기 위해 이왕묘(二王廟)가 세워져 있었다. 2200년 전의 수리 시설이 지금까지 크게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중국 문명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오늘 밤은 도강언의 옥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