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령관·친일파 처단 독립군들 이야기
"항일 운동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늘 생각"
"시대라는 건 사람을 보여줘야 완성되는 것"

2012년작 '도둑들'은 매끈한 한국형 범죄 블록버스터라는 찬사를 받으며 극장으로 1298만명을 불러들였다. 이후 등장한 '명량', '국제시장'에 순위가 밀렸는데도 역대 4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 영화를 만든 최동훈(사진) 감독이 꼭 3년 만에 들고온 영화는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관과 친일파 처단에 나선 독립군들의 이야기인 '암살'이다.

개봉을 한주 앞둔 지난 15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 감독은 "'도둑들' 개봉이 아들 장가보내는 기분이었다면, '암살' 개봉은 딸을 시집보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분신과 같은 아들을 키워 세상에 내놓는 뿌듯한 기분보다는 소중히 품어온 존재를 조심스레 다른 세상으로 보내는 심정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만큼 1930년대 항일운동을 하는 독립군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은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오랫동안 품었던 숙제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죠. 숙제 같은 거예요. 1930년대 소설은 어릴 때도 많이 읽었고 국문과를 나왔으니 교육과정에도 있었어요. 그런데 항일 무장 투쟁에 관한 영화가 그동안 많지는 않았거든요. 그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타짜'(2006) 끝나고 나서 쓰려 했는데 안 써지더라고요. 이완용 피습 사건도 생각했고 다른 실화들도 찾고 있었어요. 그러지 말고 모종의 인물을 만들어서 이야기를 끌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도둑들' 끝나고 나서였어요. 누군가는 고독하게, 누군가는 활발하게 싸웠던 얘기를 하게 된 거죠."

그렇게 세 캐릭터가 탄생했고 세 갈래의 이야기가 생겼다.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직후인 1911년의 이야기, 암살 계획을 둘러싸고 임시정부 경무국 염석진 대장(이정재)과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청부살인업자 '상하이 피스톨'(하정우)이 펼치는 1933년의 이야기,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시행에 옮겨진 1949년의 이야기다.

영화는 역사에 이름조차 남지 않은 평범한 독립군들이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했다.

"독립군이라면 의연한 모습을 생각하죠. 그런데 그때 사진들을 보면 웃고 있는 사람도 있어요. 결의에 차 있지만 행복해지려 애썼던 사람이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런 이름 없는 독립군을 상징하는 인물은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이다. 영화 전체를 대표하는 독립군의 상징을 여성 캐릭터에게 맡긴 것은 상업적 측면에서의 선택일 것이라 여겨졌지만 최 감독은 '절실함'의 정서를 이야기했다.

"그 사진 한가운데에 이런 여자가 있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이미지였어요. 국가가 없기는 했지만 정규군에 포함된, 자기 총을 든 여자. 남자가 총을 들고 뛰는 모습은 관객에게 익숙하고, 또 남자는 액션을 잘하잖아요. 확신에 차 있고 멋있어 보이는 액션이 나오죠. 그게 아니라 절실함으로, 용기를 내서 힘겹게, 꾸역꾸역 하나씩 밟아 가는 싸움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암살'의 액션 장면들은 분명히 '도둑들'의 화려한 와이어 액션과는 전혀 다르다. '암살'의 역동성은 각 인물이 신념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는 모습에서 나온다.

"발을 헛디뎌 넘어지고 지붕에서 떨어져 다쳤는데도 뛰는 거죠. 지현 씨에게도 액션을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고, '도둑들'의 예니콜은 잊으라고 했어요."

영화는 대부분 시간을 그 시대를 살아간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보낸다. 이후 길지 않게 등장하는 1949년의 무대를 통해 이야기는 시대와 역사로 확장된다.

"시대라는 건 참 보여주기 어려워요. 그 시대의 건물을 보여준다고 그 시대를 보여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 시대의 사람들을 보여줘야 완성되는 거죠. 이 영화는 세 명의 운명에 관한 거예요. 셋의 운명만 보여주는 게 근본적으로 맞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영화가 두 가지거든요. '거두절미한 장르영화'와 '정서가 있는 장르영화'. 전자는 '범죄의 재구성'이고 후자는 '타짜'죠. '암살'에는 '타짜'와 비슷한 면이 있어요."

이 영화의 순제작비 180억원은 보통의 한국 상업영화의 네 배를 넘는 액수다. 촬영 현장을 지휘하고 최종 편집본을 완성하는 책임자인 감독에게 '돈값'을 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을 리 없다. '암살'의 장점은 그런 부담감이 없는 척을 하지도, 중압감에 빠져 길을 잃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보여줘야 할 것은 빨리 털어버리고 진짜 들려주고 싶은 것을 향해 나아가자는 인상이 강하다.

"쓰면서 점점 커지는 거예요. '드디어 내가 미쳐가는구나' 했어요. 찍을 데가 없으니 다 지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중압감을 내려놓고 도망가려고 하면 안 돼요. 스트레스는 나의 친구라는 생각으로 그냥 하죠. 촬영 시작하고 몰입하니 한 1주일 지나 사라지더라고요. 우리는 열정적으로 만들었으니까 관객도 우리와 생각이 같다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집필과 각본을 거쳐 영화를 촬영하고 편집해 개봉하기까지 어느 과정을 가장 좋아하는지 묻자 "당연히 쓰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암살'이 개봉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차기작 구상을 물었다.

"서랍 속에 많이 있어요. 한자도 쓰지 않은 것도 많고. 아직은 정말 모르겠어요.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야 해요. 3년간 그것만 생각해야 하니까요. 3년 동안 나를 집중하게 하는 걸 해야죠."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