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관 사진가
체구가 건장한 한 남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장승처럼 우뚝서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의 눈에는 비장함이 서려있었다.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기차는 소련의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중국 하얼삔 역에 멈춘다, 그리고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가 기차애서 내려 걸어온다. 눈 깜짝할 사이 3발의 총성이 섬뜩하게 공기를 가르며 붉은 피를 튀게 한다. 그렇게 해서 안중근 의사와 가족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이 공연을 두 번씩이나 관람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너다>를 통해서 연극의 참맛을 알게 되었으며 안중근 의사의 애국심을 되돌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마음 편히 살아왔으면서도 감사함을 몰랐던 지난날이 부끄럽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과연 나라가 위태로울 때 나는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안중근의 아들 준생(송일국)이가 울부짖으며 "영웅의 자식이라고 해서 영웅이 되어야만 합니까?" 그 대목에서는 일본의 순사들에게 얼마나 혹독한 고문과 괴롭힘을 당했을까를 짐작케 한다. 안중근은 어머니 조 마리아(박정자)에게 항소를 해야 합니까 물었을 때, 단호하게 하지말라고 했다.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한 일인데 어찌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려 하느냐는 그 말에 섬뜩하면서도 가슴을 도려내는 듯 격한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일본은 국제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신속히 재판을 진행해서 안증근을 사형 시키려 했다. 또한 항소를 하게 함으로서 일본이 민주적 방법으로 재판을 했다는 것을 국내외로 알리기 위해 항소를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다고 유혹을 했다. 만주벌판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들은 하나같이 항소를 하라고 엎드려 간곡히 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한 체 부인 (배혜선)이 한 올 한 올 손수 바느질해서 만든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때의 장면은 숨을 멈추게 할 만큼 극적이면서 매우 슬픈 장면이었다. 게다가 100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생동감 있게 풀어가려는 연출가 윤석화의 노력이 깊이 배어있다. 그 시대의 풍경을 무대 벽면에 영상을 비추어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한 것은 연극의 또 다른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과 땀을 쥐게 하는 장면들은 언재 80여분이 지났는지 의아할 정도다. 그렇게 격한 감동으로 가슴을 뛰게 한 연극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안중근과 동지들이 모여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여 나라를 독립시키겠다는 의지로 안중근부터 한 명 한 명 예리한 칼로 손가락을 내려칠 때마다 선혈이 벽면에 튀는 장면은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았으며 차라리 두 눈을 감고 싶었다. <나는 너다>는 혼란스러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매우 충격적이며 신선한 연극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나라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활개 치며 살아가는 이상한 나라에서 안중근의 애국심은 더욱 빛을 발한다.
송일국의 열정을 토해내는 1인2역은 명연기였다. 또한 한사람의 영웅 때문에 격어야 하는 가족들의 처절한 삶의 이야기를 애절하면서도 담대하게 풀어가는 것은 연출가 윤석화만이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으며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예술은 어느 분야 건 감동을 주지 못하는 작품은 명작이라고 말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너다>는 연출가 윤석화의 빛나는 명작이다. 가냘픈 외모에서 어떻게 그런 카리스마적이며 곱디고운 면이 있을까 놀라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