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준영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장
에베레스트 산 초입에 루클라 공항이 있다. 해발 2850m. 착륙하기가 세계에서 가장 어렵기로 꼽힌다. 활주로가 좁고 짧다. 경사면에서 착륙할 때 속도가 줄고, 이륙할 때 가속도가 붙는다. 최대 20인승 비행기가 드나들 수 있다. 뉴욕시에는 JFK 공항이 있다. 뉴욕뉴저지항만공사에서 관리한다. 북미에서 두 번째로 긴 4480m 활주로 하나를 포함해 활주로가 4개에 이른다. 전 세계로 오가는 A380급 여객기와 초대형 화물기가 폭주한다.

항만으로 와 보자. 항만에서 뱃길을 더 깊게 하는 것은 협소한 활주로의 공항을 큰 활주로의 공항으로 키우는 것과 같다. 좀 과장하자면, 루클라 공항을 JFK 공항으로 바꾸는 것이다. 패러다임이 바뀐다. 로컬항에서 글로벌 포트로 발돋움한다. 세계의 항만들이 이른바 '항로 증심'에 목을 매는 이유다. 그런데 어렵다. 천문학적 돈이 들기 때문이다.

'증심'은 또한 배의 대형화 추세와 맞닿는다. 세계 주요선사의 주력선대는 이제 1만TEU급, 10만t급 내외로 간다. 부산항에는 이미 1만8000TEU급 맥키니 몰러호가 기항했다. 인천항에 들렀던 가장 큰 컨테이너선은 5600TEU급이었다. 공동운항도 추세다. 세계 1,2,3위의 선사들이 공동영업하는 법인인 P3도 출범 직전까지 갔었다. 1만TEU 선박이 4000TEU 선박보다 연료소비 등 TEU당 운항비용이 약 37% 절감된다는 드루리 컨설팅의 연구결과가 있다. 운임경쟁에 유리하다는 것도 대형화의 이유다.

인천항은 최근 기획재정부로부터 증심의 사업성을 인정받았다. 2018년까지 1816억원의 정부예산으로 인천신항의 항로를 기존의 14m에서 16m로 증심한다. 쾌거다. 1만2000TEU급 컨테이너선도 들어올 수 있다.
인천항에 좋은 게 인천에 좋은 것인가? 우문 같지만 사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다. 무역항이라는 보안지역의 패쇄성, 그리고 물류의 공해로 인해 인천항이 만드는 부가가치와 일자리 창출 효과 등이 상쇄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하대 이상윤 교수의 2009년 연구에 따르면 항만물류산업의 생산유발액은 12조5680억원으로 인천 총생산의 33.3%이다. 취업유발 인원은 10만3618명이다. 인천항의 뱃길이 깊어지면 부산과 북중국을 기항하는 큰 배들이 인천으로 기수를 돌릴 수 있다. 대서양과 태평양 정기노선을 끌어올 수 있다. 늘어나는 물량을 바탕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고 지역의 산업클러스터가 같이 상승작용을 하면 그 과실은 인천에 고스란히 남는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항을 보자. 엑슨모빌 본사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정부의 각종 세제와 항비 혜택을 바탕으로 항만 주변에 모여 있다. 생산·조립과 라벨링 등이 원스톱으로 이뤄진다. 항만을 중심으로 한 산업클러스터가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경제를 굳건히 지킨다. 인천도 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에 발맞춰 증심의 효과를 극대화해야 할 시점이다.

인천에는 수도권이라는 확실한 배후지가 있다. 세계 최대 상하이항이나 산둥성 항구 등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항만들은 예외 없이 거대한 생산과 소비의 배후지를 갖고 있다. 인천은 그 입지를 누리지 못해 왔다. 이중 역차별 때문이다. '수도권'을 규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해 산업시설이 변변히 자리를 못 잡고 이른바 '해양수도'라는 부산에 정부의 정책지원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이번 증심 소식이 이런 우려도 이겨나가는 새출발의 '골든벨'로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