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조-전자마이스터고교 교장
옛 시조(時調)에 이런 게 있다. "늦장마 잔 칼질에 뼈만 남은 비탈길을 한 송이 들국화 제철이라 꾸몄구나. 나그네 지친 장대를 여기 꽂고 쉴까나" 늦장마에 휩쓸려 을씨년스러운 산비탈인데, 감격스럽게도 들국화 한 포기가 의연하게 서 있더라는 것이다. 그 의연함이 쓰러지도록 지친 나그네에게 새 힘을 주었다는 노래다. 아름다움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들국화 같은 굳센 의지가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 모두 지쳐버린 것 같은 늦가을의 산하, 차가운 비바람에 을씨년스러운 풍경, 그 가운데에 유독 홀로 청정하게 서 있는 들국화의 자태는 숭고한 느낌을 주는 의지적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한 겨울에도 냉수마찰을 하는 습관을 가졌다. 놀라 구경하고 있으면 "찬 맛이 참 좋다"고 하셨다. 그 후 필자도 40대 초반까지 냉수마찰을 했고, 지금도 목욕탕에선 냉·온(冷溫)욕법을 한다. 인생도 찬 맛을 음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는 맛을 알게 된다. "달이 아무리 밝아도 쳐다볼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하는 김소월의 시는 괴로움이 있었기에 달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알게 됐다는 인생의 귀중한 경험을 말해주고 있다. 이 세상에 값 있는 일들은 대부분 고통을 통해 이뤄진 것이다. 록펠러는 아주 큰 부자였다. 그리고 그의 부(富)를 자녀들이 이어받고 있다. 대부분 재벌의 자녀가 허랑방탕한데 반해 록펠러의 자녀들은 아주 훌륭한 재벌이자, 신실한 신앙인이자, 사회사업가다. 거기에는 아버지 록펠러의 가정교육이 있었다.

자녀들에게 모두 신문과 우유 배달, 세차장에서 차 닦기 등을 시켜 용돈을 벌게 했고, 대학에서도 스스로 학비를 벌게 했다. 강철왕 카네기는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학교와 도서관 등을 세워 번 돈을 사회에 돌려줘 칭찬을 받는 부자 중 한 사람이었다. 카네기에게 영국의 조단이라는 기자가 물었다. "당신처럼 돈을 잘 쓰고도 돈을 지킬 수 있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카네기는 "입술을 물고 울어본 경험(經驗)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증기 기관차를 발명한 제임스 와트도 처음엔 연구할 돈이 없어서 깡통을 모아 펴 써야만 했다. 발명왕 에디슨은 1000여 종류의 발명 특허를 따냈다. 1931년 10월 18일 에디슨이 84세로 눈을 감자, 전 미국 국민은 그날 밤 10시부터 10분간 미국의 전등불을 꺼서 천재의 위대한 업적을 기렸다. 그러한 에디슨은 집안이 가난해 12살 때부터 기차 안에서 신문팔이를 해야만 했다. 스토우 부인이 쓴 <엉클 톰스 캐빈>은 남북전쟁 때 미국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어서 링컨이 노예해방을 하도록 만든 정신적인 뒷받침을 한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고를 스토우 부인은 포장지 안쪽에 써야할 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불후의 명작이라고 하는 밀턴의 <실락원>은 밀턴이 눈이 멀고 정치에서 밀려나서 병든 몸으로 오두막집에 누어 딸에게 구술해 쓰인 것이다.

실제로 이런 예를 들려면 한이 없다. 분명한 것은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값 있는 게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사람은 고통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된다. 이 세상이 천국이라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찾지 않는다. 자기에게 능력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하느님을 찾지 않고 의지하지 않는다. 한국 속담에 "고생이 낙(樂)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달관한 경지일 테지만 고생이 약인 것만은 누구에게나 분명한 사실이다. 고생을 낙으로까지는 못 삼아도 고생을 약으로는 삼아야 한다. 그래야 고난으로 뒤틀려진 인격을 바로 세우고 연약한 인격을 강하게 하는 인생보약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