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산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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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표 하나 또 띄운다. 뇌수에 수없이 떠 있는 기억의 일련번호에 4·16을 힘주어 새겨 넣는다. 4·3, 4·19, 5·18…. 힘 없이 스러져간 들풀의 영혼을 쑤어 곤 역청으로 '허망하였으므로 존재하노라'고 부제를 단다. 살아 있는 것이 송구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누차례 깨닫지만, 그렇다고 황망한 바다를 바라보며 맥 없이 눈물만 흘릴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아울러 다짐해 본다.

한 나라 조직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데에 왈가왈부 진단의 강설이 난무하지만 파헤쳐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티끌과 드라마틱하게 조합되는 알 수 없는 배후들이 그 정체였다. 미개라느니 후진국형이라느니 하는 말의 뿌리가 불신과 반목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게송 같은 뇌까림은 아무래도 문제 해결 의지를 마비시키고 만다. 그래도 문제는 풀어야 하고, 풀리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까발려졌다는 것에 한 번 더 방점을 찍어 본다.

오늘의 폐허를 응시하는 만인의 시선은 다양하겠으나 가슴에 와 닿는 가르침은 하나로 응집되고 있다. 칠팔십년 머리로 사랑해오다 이제 겨우 가슴팍에 내려왔는데, 먼저 가게 돼 오히려 미안하다는 고인(김수환 추기경)의 말과 연결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어찌 보면 재기의 기틀일 수 있음도 주지해 본다. 4·16 이후 필자는 진도를 '보배 섬'이라 부르고 있다. 이 시대 최고의 교훈을 '산 자'에게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자'가 미래에 '남아 있을 자'에게 그래도 삶은 희망이라고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은 거기에 엄청난 희생이 담보돼 있어서이다. 자,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실행에 옮길 것인가?

몇 해 전 미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 형님들의 주거지가 제각기 달라 세 개 주를 넘나들며 장시간 차 안에서 지내야 했던 기억이 있다. 이국적 풍경, 건물과 사람, 거리의 자동차들이 이채로웠지만 역시 '사람 사는 곳'이란 공통분모가 존재했다. 경이로웠던 것은 아침 출근 시간대에 거대한 행렬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은 교통경찰이나 사고가 아니라 통학버스였다는 점이다. 투박스러우리만치 네모지고 가벼운 듯한 노랑 바탕이었지만 존재감은 놀람 그 이상이었다. 러시아워임에도 경적을 울리지 않고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정지해 있는 모습은 학생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톺아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면에, 위반 시 엄청난 벌금과 벌점, 높은 보험료 부과라는 약발이 먹혔지만 안전이라는 처방전을 담보한 결과임도 주목되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정신 줄을 놓지 말자는 의지들이 인천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4·16 이후 '페이스 북'에 이른바 '친구'들이 올린 씨줄과 날줄의 언어들은 더욱 견고하고 세련돼 가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면이고 단정일지 모르나 성숙한 시민사회로의 행보는 더디겠지만 희망의 밀알이 된다는 것을 예고하는 장면이라 하겠다. 더욱이 4·16이라는 큰 스승을 잊지 않는다면, 머리로 사랑했던 지역 사랑이 가슴에 꿴 채 나부끼는 보배 섬의 기림으로 인천 사회 깊숙이 안착할 것이라 믿고 싶다.

어느 덧 한 달 보름이 지났다.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쌀 뉘 고르듯' 선량이 아닌 불량을 솎아내는 의지도 필요하지만, 난세의 그물을 함께 당겨야 한다는 숙제도 인천 사회 전체에 요구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인지 다시 한 번 주억거릴 필요가 있다. 온 국민이 함께 슬퍼했고 실의에 빠졌었지만, 그래도 재생의 의지를 믿음직스럽게 도닥이는 것은 뿌리째 흐르는 '우리'라는 정서였다. 1990년대 한 때를 유행처럼 떠돌게 했던, 일명 '초원복국'의 불손했던 대화가 느닷없이 대비돼 떠오르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

/이종복 터진개 문화마당황금가지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