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필 시인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에게 실망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만연된 안전 불감증이 빚은 대재앙이다.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도 비애와 울분은 가라앉을 줄 모른다. 국민들에겐 선원과 해경의 무책임·무능에 대한 비난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에 초조와 불안에 떠는 단원고 학생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 방송과 현장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상부에 보고해 지침을 얻으려다가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점에 성난 감정이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게다가 선체가 급속히 기울자 생명의 위기를 느낀 나머지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안전을 내팽개치고 비겁하게 도망쳤다. 그때 해경이 우르르 몰려가 이들을 구조하며 허둥대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또 한 사람도 선실로 진입을 시도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304명의 무고한 승객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당시 이준석 선장과 김경일 해경정장이 제대로 지휘했더라도 이런 끔찍한 참사는 충분히 비켜갈 수 있었다. 만일 해경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대처했더라면 영웅으로 될 수 있는 기회였다.

전 공직자는 말단 직원 한 사람의 잘못이 이처럼 커다란 파장을 자초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는 미증유의 인재다. 지금 국민들에겐 해경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바닥을 쳤다. 그들에게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일말의 의무감도 엿볼 수 없었다. 더욱이 기자 인터뷰를 통해 이 선장과 김 해경정장은 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한 변명과 거짓을 일삼았다. 그들은 국민을 속이려 했으나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휴대전화에 담긴 동영상과 사진으로 인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안전 불감증을 지적했고, 이번 참사를 '완벽한 인재'로 규정하면서 전쟁을 제외한 최악의 참사라고 평가했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한국 사회가 '성장과 경쟁의 논리가 안전을 뒷전으로 하는 풍조를 만든 것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중국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안전행정부, 해경, 해군, 해양수산부가 제각각 따로 놀면서 생존자를 한 명도 찾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국가개조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했다. 특히 주목할 내용은 해경조직의 해체였다. 그 이유를 진중하게 설명했다. 그 일부를 옮겨보면 이렇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 해경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 원인은 해경이 출범한 이래, 구조·구난 업무는 사실상 등한시하고, 수사와 외형적인 성장에 집중해온 구조적인 문제가 지속돼왔기 때문입니다. 해경의 몸집은 계속 커졌지만 해양안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은 제대로 확보하지 않았고, 인명구조 훈련도 매우 부족했습니다. 저는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그냥 놔두고는 앞으로도 또 다른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해경 입장은 편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자숙하면서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면, 다시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향후 대통령 구상방안의 실행 여부를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뜻과 힘을 한 데 모아 재도약하는 계기를 이뤘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비탄에 빠진 유족들의 요구사항을 적극 지원·협조함으로써 깊은 상처가 다소나마 치유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