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론 ▧
세월호의 비극이 비통함과 수치심을 넘어 대한민국의 위기로까지 치닫고 있다. 대통령이 오랜 고뇌 끝에 눈물의 사과와 함께 정부의 총체적 무능함을 타파할 특단의 조치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그마저 찬반 논란에 휩싸여 또 다른 갈등과 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세월호의 쌍둥이 배라는 오하마나 호를 탄 적이 있다. 4년 전 아들이 대학에 합격한 기념으로 외국에서 온 아들 친구와 함께 저녁에 인천항을 출발해 아침에 제주도에 도착하는 여정이었다. 그야말로 거칠 것 없는 부자 간의 여행기로, 일생일대 추억을 만들어 볼 꿈에 부풀었다.

하지만 그 배는 화물수송선도 크루즈도 아니고, 제 멋대로 사방팔방으로 삐죽삐죽 뻗어나간 거대한 '철조괴물'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자동차와 화물차의 행렬, 알 수 없는 컨테이너와 함께 섞여 배에 올라가는 수많은 단체와 연인, 그리고 효도관광이라는 생각이 든 어르신들의 흐뭇한 미소, 한없이 명랑한 학생과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소리.

그러나 세상천지 이처럼 어색함과 부조화로 얼룩진 여행이 있을 수 있을까? 기쁘면서도 나도 모르게 엄습해 오는 불안과 공포, 미로 같은 객실과 어색한 공연들, 맛은 있었지만 크루즈에 어울리지 않는 학교 구내식당과도 같은 쿠폰 식사, 운동장 같은 4등칸의 안쓰러움, 그냥 서 있는 것도 불안한 미끌미끌한 바닥. 그야말로 생전 처음 겪어보는 감정과 불안감에서 밀려오는 가족애와 제주도라는 희망이 함께 교차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세월호의 모습도 이랬을까? 아마도 그 어떠한 다른 여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설렘과 명랑함의 정도는 더 컸을 것이다. 한없이 맑은 청소년들의 수학여행이었고, 특별한 사연이 유난히 많았던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슬픔과 망연자실, 억울함과 안타까움, 분노와 배신감의 정도가 더 크고 깊게 느껴지는 것이다. 과연 304명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남긴 이 공황과 상처의 트라우마는 언제까지 지속되고, 그 끝은 어디일까?

대통령은 국가개조와 함께 국가안전처와 행정혁신처의 신설, 안행부 축소, 해수부 기능 축소, 더불어 공무원 충원제도의 개혁과 관피아의 척결을 약속했다. 이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해양경찰청의 전격 해체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그래 잘했어, 그게 최선이야'라는 반응이 꽤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만큼 이번 사건은 극약처방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해경은 망연자실했다. 함께 직격탄을 맞은 다른 부처의 충격과 자괴감도 크겠지만, 그게 공직이고 공익을 추구하는 조직의 숙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부처라고 감히 안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건 시작일 뿐이다. 누가 얘기하지 않아도 세월호 전후의 국면을 극적으로 전환시켜 봉합하기에는 그동안의 구조적 모순과 왜곡의 정도가 너무 방대하고 깊기 때문이다. 누가 누구를 탓하고 원죄가 누구인지 밝히고야 말겠다는 끝없는 갈등의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해경은 사실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한 달 이상 집에도 못 들어가고 아직도 바다에 떠도는 16명의 실종자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해양구조요원들의 마음과 가족들의 처지도 한 번쯤 헤아려 주어야 하지 않는가? 우리는 모두 가족이 있기에 가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부끄럽고 아빠가 걱정되고 아파도 말을 못하고 하소연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공직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해양강국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중국 어선에 대항해 목숨을 던졌던 해경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독도를 지켜왔기에, 해경의 존속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이것보다 더욱 중요하게는 환갑 나이의 축적된 전문성과 면면이 이어온 해양수호의 자긍심과 충성심을 하루 아침에 묵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해경의 철저한 반성과 개혁은 필요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극단적인 해체의 결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마치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성적이 부진하다고 해서 한참 후반전을 치르고 있는 팀을 해체시키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해경의 해체와 같은 경우는 세계의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월드컵의 감독을 교체하고 경기 후 철저한 조사와 함께 새로운 전술과 포지션을 재정비해 환골탈퇴한 팀의 모습을 성적으로 보여주게 하면 된다. 이 점이 바로 해경에 지워야 할 임무이자 부담이다.

세월호의 희생자와 가족, 그리고 가족에게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미안함과 비통한 마음이 앞선다. 어서 빨리 수색작업이 완벽하게 마무리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본다. 이제 화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줄 때가 되지 않았냐고. 상호 비방과 비난을 전면중단하고 우리 모두 상생의 길을 찾아볼 때가 되지 않았냐고.

/명승환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