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역할에 대한 흔한 오해가 있다. 민사소송의 경우 일단 소송만 제기해 놓으면 그 다음에는 법원이 알아서 사건을 조사, 판결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심지어 법원이 알아서 상대방 당사자로부터 돈까지 받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는 민사소송의 구조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사소송에서는 절차에 관해 당사자 즉 원고와 피고에게 주도권이 있고 소송자료 즉 사실과 증거의 수집과 제출의 책임도 당사자에게 있다.

법원은 당사자가 제출한 자료를 기초로 판단만 할 뿐이다. 이를 당사자주의 또는 변론주의라 한다. 따라서 승소할 수 있는 사안이라 해도 당사자가 주장과 입증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패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원고가 승소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판결 내용대로 이행을 받기 위해서는 별개의 절차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를 강제집행이라고 하는데 이는 민사소송과는 별도의 절차로서 채권자의 신청에 의해서만 개시되는 절차이다.

형사소송의 경우 약간 사정이 다르기는 하다. 위와 같은 당사자주의와 반대로 법원에게 소송에서의 주도적 지위를 인정하는 소송구조를 직권주의라 한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당사자주의와 직권주의를 절충, 법원이 직권으로도 사건을 심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의 직권심리에도 한계는 있다. 민사소송의 원고와 피고에 대응하는 형사소송의 당사자는 검사와 피고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형사소송절차는 검사의 공소제기가 있어야만 개시되고 또한 검사가 공소제기한 범위 내에서만 심판을 할 수 있다. 또한 증거조사도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신청에 의해 행해진다. 따라서 형사소송에서도 당사자가 소송활동을 얼마나 잘 하느냐에 따라서 판결 결과에 차이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소송의 구조와 법원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종종 법원과 재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법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법원의 역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때가 속히 오기를 희망한다.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정창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