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예술인 26 - 인천오페라단장 황건식
'불혹에 뒤늦게 성악 입문 · 97년 '인천오페라단' 창단"
예술은 자신과의 싸움" … 1일 종합문예회관서 독창회


불혹의 나이로 성악에 입문해 10여년 넘게 오페라단을 이끌며 인천지역 오페라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황건식(65) 인천오페라단장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임에도 불타는 열정으로 지난해까지 오페라 무대에 서며 젊은이 못지않은 공연을 선보여 왔다. 이번엔 독창회다. 오는 12월 1일 인천종합예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5년 만에 독창회를 연다. 생애 8번째로 홀로 서는 무대다.

#.성악과 운명적인 만남
황 단장의 성악 입문기는 독특하다. 가업을 잇기 위해 농과대학을 졸업했지만 평소 가곡과 아리아를 즐겨 부르며 대학동기들 사이에선 오페라의 선구자인 '카루소'에 비견되기도 했다.
결혼 당시 '40세부터 교회에 나가겠다'는 장모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성악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인천율목감리교회의 성가대원이 된 그는 성악에 대해 체계적인 지도를 받았다.
황 단장은 "그 때 성악을 알아가면서 정식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조병욱 인하대 교수와 안형일 서울대 교수에게 모두 6년여 간의 교육을 받았다. 87년 첫 독창회를 시작으로 몇 번 더 무대에 서고 가곡집도 냈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다.
오페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로 유학을 결심한 것이다. 음악인으로서 최고의 꿈인 오페라 무대에 꼭 서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며 52세의 나이에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3년 반 동안 자식또래의 동기들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혹독한 노력 끝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97년 인천오페라단을 창단한다.

#. 오페라 무대에 서다
"은퇴까지 10작품에 출연하겠다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결과적으로는 98년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시작으로 지난해 '나비부인'까지 9작품밖에 못했습니다." 표정에서 아쉬움이 묻어난다.
이유가 있다. 매년 한 작품씩은 꼭 출연했지만 '오텔로'를 유독 좋아했던 터라 3번이나 무대에 섰기 때문이다.
오페라 중에서도 매우 어려운 작품으로 손꼽히는 오텔로다. 그럼에도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 오텔로의 감정이 자신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외골수적이면서도 순정적인 성품이 나와 비슷한 것 같다"고 웃었다.

#. 창작오페라 & 오페라 극장
서울에 비해 인천의 오페라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평에는 '모르는 소리'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10여 년 전에는 그럴지 몰라도 현재는 많이 발전,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고 지레 짐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문화에 대한 인식에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황 단장은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한 공연만 하더라도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민간단체로는 힘든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기업들의 지원과 함께 관중들의 호응이 합쳐져야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고 역설했다.
또 한국오페라의 발전을 위해 창작오페라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견해를 나타냈다.
이미 6여 년 전부터 준비해오고 있는 작품이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다.
황 단장은 "공주와 평민(그것도 바보)의 사랑이야기라는 기본 스토리와 온달의 장례식에서 관이 움직이지 않을 때 평강공주가 관을 쓰다듬자 움직였다는 에피소드 등이 오페라로 만들면 재밌을 것"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작곡가와 대본가를 만나 구체적으로 제작을 추진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현재 중단된 상태"라며 안타까워했다.
창작오페라는 잠시 유보된 상태지만 다른 꿈은 현재 진행 중이다.
좋은 작품들을 골라 상시 공연할 수 있는 작은 오페라 극장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지녔던 그는 충남 서산에 부지를 마련, 내년부터 공사를 시작한다.
"도심 속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는 예술을 위해 서산에 공간을 마련했다"며 이름도 '자연의 소리 하우스'라고 지었다고 전했다.

#. 독창회 열 번을 향해
65세에 독창회를 열면서 체력감퇴와 소리저하로 걱정이 태산 같다는 그지만 하루 2시간씩 연습하며 차분히 준비하고 있다.
황 단장은 "그동안 오페라에 대한 사랑으로 독창회를 잠시 중단했었는데 지난해를 끝으로 오페라무대를 은퇴하고 다시 서는 무대"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오랜만의 무대인만큼 1시간30분여 동안 부를 16곡 중 일부는 성가음악이나 영화음악 같은 편안한 느낌의 곡으로 선택했다.
"특히 쟈크 루보의 '마이웨이'는 20년 넘게 걸어온, 오페라라는 내 인생의 길을 나타내고 싶어 선곡했다"고 말했다.
'그네', '뱃노래', '아리랑'과 같은 우리의 가곡도 준비했다. 그가 사랑하는 오텔로의 'Gia nella notte densa(밤은 깊어가고)'도 빼놓지 않았다.
황 단장은 "예술에 대한 정진은 자기와의 무한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며 "인생의 황혼 길에서 노인이 되어도 소리의 향기를 찾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끝으로 "오페라는 10작품이라는 목표달성에 실패했지만 독창회는 10회 공연이라는 목표를 이루고 싶다"며 다짐하듯 말을 마쳤다.

/심영주 인턴기자 blog.itimes.co.kr/yjsh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