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박흥규 
11~17일 인천 갤러리 가온 '월야'展

"칠하고 깎아내고 … 오랜시간 공들여"




박흥규 화백의 작업은 단번에 완성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헤아릴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 어떤 작품은 100여번의 수정을 거쳐 비로소 완성된다.
그만큼 작업에 들이는 물감량이 많다. 칠하고 깎아내고 다시 칠하고를 수도 없이 반복해서 하나의 작품이 탄생된다.
완벽주의자적인 성향 때문이라고 작가는 스스로 진단한다. 화력에 비해 개인전이 적은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최근엔 작업이 조금 편해졌다고 말한다. 개인전에 성큼 다가설 수 있을 정도까지다.
1년만에 개인전을 다시 편다. 전시 타이틀을 '월야(月夜)'로 정했다. 11일부터 17일까지 인천시평생학습관 갤러리 가온에서다.

#. 산고의 고통으로 탄생된 작품
오랜시간 공들여 그린 작품이건만 언제나 부족함이 있다. 이제 그만 붓을 내려 놓고 마침표를 찍어야하는데 쉽사리 안된다. 전시하는 당일 아침까지 작품을 붙잡고 씨름하는 일이 한 두번이 아니다.
"부족하다는 느낌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지난 작품이 마음에 안차서 다시 지워버리기까지 합니다. 옛 그림들이 남아있지 않더군요. 작품에 대한 완벽주의가 사달을 내는 거지요."
스스로 성격이 내부지향형이라고 말한다. 모색적인 경향도 내재한다.
하나의 작품을 시작할라 치면 온통 그림에 매달려 산다. 어찌보면 작업이 고통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평생을 그림에 대한 갈망으로 살았다.
완벽하지 않은 그림을 다른 이에게 보여줄 수 없었다.
"개인전이란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생 한번을 해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지 않겠나 했지요."
최근엔 달라졌다. 전시가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주의에서 탈피해보려 합니다. 전시를 여는 것이 좀 편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전시를 코앞에 둔 시점까지 여전히 붓을 들고 있다.

#. 달과 여인들
이번 전시 작품에는 매번 달이 등장한다. 더불어 예의 여인도 있다. 타이틀 그대로 '월야(月夜)'적 이미지가 물씬하다.
"청년 교사시절 경기도 양평쪽 분교로 발령을 받은 적이 있었지요. 강원도 접경 산골이었는데 어느날 밤 문풍지 사이로 올려다본 달이 한가득 다가왔습니다. 순간 주체할 수 없는 감상에 빠졌습니다. 그때의 감격이 항상 가슴속에 자리하고 있었던 거지요."
달 자체가 주는 신비감을 옮기고자 했다. 달이 주는 느낌이야말로 인생 전반을 조명하고 있다는 감상에 다다랐다.
"느낌만을 담으려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달을 화폭에서 빼려했지요. 그런데 원형의 달을 그려넣어야 비로소 이미지가 완결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인 이야기로 넘어간다.
등장하는 여인은 상황에 따라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라고 해설을 더한다. 모성이 가진 관대함과 본성적인 여성성 등 다양한 이미지가 혼용돼 있다.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차용한 것입니다. 소아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인류가 가진 문제들을 짚어나가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공을 들인 작품을 짚어달라고 묻자 아직 끝맺지 못한 작품이 아니겠느냐는 반문이 돌아온다.
사인을 넣지 않은 작품 중에는 여인과 아이가 함께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모성성이 드러난 듯 한데 여인의 표정이 영 밝지가 않다.
한쪽에는 웅크리고 앉은 인물이 있는 그림이 있다. 기다림과 갈망, 고독함 등이 묻어난다. '인간 존재가 가진 입장적인 모습'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대가는 적당할 때 손을 뗀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먼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두 25점을 걸려 한다.

#. "그림은 나의 위안"
"내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은 일은 그림 그리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차분한 말투에 진정성이 묻어있다.
교단에 서 있으면서 항상 그림에 대한 갈망이 컸다. 온 시간을 그림에 몰두하고픈 갈망이었다. 정년 퇴임을 한 연후에야 풀 수 있었다. 네 번의 개인전이 모두 정년퇴임 이후의 일이다.
그림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우울 모드에서 확실히 밝아졌다.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대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그림이라는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계와 결코 떨어질 수 없지요. 나아가 그곳에서 구원을 받고 싶습니다."
그림 그리는 일이 마냥 행복한 화가다.

/김경수기자 kk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