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국화가 이환범
30일부터 인천 신세계갤러리

야외서 완성한 30여점 선봬



인천의 중견화가 이환범 인하대교수가 오랜만에 개인전을 열고 초대장을 건넨다.
길을 떠날 때면 언제나 화첩을 챙겨드는 이 화백이다. 안에서 보단 밖으로 나가 사물로부터 기를 받아가며 작업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그다. 대상은 한정돼있지 않다. 풍경일 수도 사람일 수도 동물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마주쳤을 때 화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그 무엇이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에서도 말과 사람들, 그리고 풍경이 있다. 장소도 국내를 넘어 이국에 다다른다.
"개인전을 제대로 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품 중 스스로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만족스러운 것이 한 두점 있다면 그나마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행히 있군요." 말끝에 웃음을 단다. 전시는 30일부터 11월5일까지 인천 신세계갤러리에서다.

#. 일필휘지 감흥
깊은 화력에 비해 개인전 횟수가 의외로 적다. 이번에는 1년만에 자리를 폈다. 그것도 계획을 세워놓고 맞춘 것이 아니다. 신세계갤러리로부터 갑작스레 초대전 제의를 받아 나서게 됐다. 늘 해오던 작업이 있기에 가능했다.

대학에서 연구년을 맞아 호주에 다녀왔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부터 올 8월까지 8개월의 휴식이었다.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겠단 작정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손엔 늘 화첩을 든 채였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대상을 만나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죠. 드문 기회가 왔을 때 놓친다면 그만큼 아쉬운 일이 또 있겠습니까." 언제나 그림을 마음에 두고 사는 그다.
호주를 선택한 이유는 1년전 여행에서 얻은 느낌 때문이었다. 우연히 들른 농·축산물 경연대회에서 예의 그 영감을 받았다.

"신이 나서 현장에서 그렸습니다. 보는 순간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거든요." 두다리로 버티고 있는 닭과 연민의 눈으로 쳐다보는 어미소와 송아지, 돼지 가족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 느낌을 다시 한번 누리고 싶었다. 호주로 간 것은 그래서다. 다시 찾은 경연장에선 더이상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실망하고 돌아서는 순간 이번엔 말이 눈에 들어왔다.

일필휘지로 그려냈다. 두 점을 순식간에 완성했다. "한 점은 그야말로 속도를 내 그린 그림이고 또 한 점은 나름대로 터치에 공을 들인 작품입니다. 마음에 들었어요. 게다가 유머와 해학을 곁들였지요. 내가 추구하는 작품입니다."

골프하는 사람들을 담은 그림도 우연히 마주친 장면들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반드시 그림으로 옮깁니다. 집 주변 골프장으로 1회 이용료가 우리돈 5천원 정도에 불과해서 가끔 찾곤 했지요."
그렇게 완성한 작품이 제법 됐다. 휴식을 마치고 돌아와 그린 작품을 더해 30점 정도 내놓으려 한다.
#. 야외에선 화첩지가 제격

야외에서 그림 그리기를 선호하는 그이다보니 종이의 선택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화선지는 너무 얇아서 펴놓고 작업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그래서 고른 것이 두께가 있는 화첩지다. 하나 또 있다. 종이 받침으로 스트로폼 판을 골랐다. "화첩지 밑에 바쳐 쓰면 유용하지요. 딱닥하면서 무게가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
최소화를 위한 선택은 필수다. 자연히 종이 크기도 줄일 수 밖에 없다. 대략 10호 정도의 화첩지를 즐겨 쓰는 이유가 다 있다.

"호수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작다고 가치마저 적은 것은 아니지요. 물론 대작이 갖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요. 작을 지언정 들이는 공이 만만치 않습니다. "

이번 전시에서 소품이 많은 이유도 바로 야외에서 완성한 작품이 많기 때문이다. "바람이라도 불어 그리던 종이가 접히기라도 하면 낭패죠. 그래도 현장에서 그리는 실감의 맛이 나를 밖으로 자꾸 불러냅니다. 쪼그리고 앉아 작업하는 불편함 따위는 문제도 아닙니다."

#. 동양화는 선의 맛
동양화의 맛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단원 김홍도 이야기를 꺼낸다. 단원의 풍을 유독 좋아하는 이 화백이다.
"단원의 그림을 볼 때마다 매번 기가 막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말 그대로 붓가는 대로 그린 그림입니다. 그럼에도 구성하며 붓 터치가 대단합니다. "

동양화의 장점을 예컨데 문인화에서 선의 맛이라고 꼽는다. 덧칠을 해 완성하는 것이 아닌 1회적이라는 점, 그러기에 맑은 기운이 난다는 것. 그것이 매력이다.

"내 그림을 보아도 탁해지면 이건 아니다 싶죠. 맑게 나오면서 붓 터치가 딱 마음에 들었을 때 쾌감이 대단합니다. 1회적인 것이므로 한번 그린 선을 똑같이 그려내기가 쉽지 않아요. 당시의 감흥에 의해 붓이 가는 것이거든요."

작가마다 스스로의 작품이 마음에 들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나마 이번 전시에서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비로소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김경수기자 kks@i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