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예술인(15) 박은희 시민교육연구센터 대표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시각. 인천 남구 용현성당 후문 지하 시연센소극장에서 두런두런 사람 소리가 들린다.
'인천연극사랑모임(이하 인연사모)'의 정기공연을 앞두고 모인 배우들의 연습 때문이다. 아마추어 배우들이지만 연습하는 모습과 자세는 프로급이다.
그리고 이들 앞에 발음과 표정, 몸짓 하나하나를 지적해주는 스승이 서 있다. 박은희 시민교육연극센터 대표다.
온갖 강의와 정기 공연 준비만으로도 바쁘지만 이 곳은 그가 절대로 한 눈팔 수 없는 공간이자 그가 사는 이유다.

#. 하루하루 바쁜 나날들

박은희 대표의 하루 일과 시작은 늘 오전 7시다. 마감은 밤 12시. 밤 새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다.
아침일찍 극장으로 출근해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나면 그의 일과가 시작된다. 요즘은 고등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부전공 자격 연수 강의를 맡고 있어 매일 서울 중구 동국대로 출퇴근한다.
"미디어영상고등학교와 같은 예체능계 고등학교 교사들의 부전공을 위한 수업이에요. 우선 9월말까지 강의가 잡혀 있는데다 '제19회 해설이 있는 무대'와 '인연사모'의 제9회 정기공연 '뉴욕스토리'도 예정돼 있어 계속 정신없이 바쁠 것 같네요."
짝수 달에 4번 진행하는 '해설이 있는 무대'의 8월 테마는 '김종수의 매직 콘서트'다.
박 대표는 "지난 6월 '울지마 꽃들아'라는 DMZ를 소재로 한 영상물을 상영했는데 감동적이었지만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다"며 "이 곳 시연센을 찾는 주관객이 청소년과 어린이인만큼 밝고 재미있는 공연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준비한 무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음달 13~14일엔 박 대표의 수업을 들은 제자들의 모임 '인연사모'의 9번 째 정기공연 막이 오른다. 박 대표 작·연출로 2년 전 창작판소리연극으로 선보여 호평받은 '뉴욕스토리'다. 이 작품은 그가 지난 1982년 34세의 나이 홀홀단신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경험한 내용을 담고 있다.

#. '희노애락'의 지난 날

연극이 좋아 오로지 연극을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가출한 시절이 있었다. 교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대학 등록금을 모으려 했지만 월세와 학원비 때문에 좀처럼 돈을 모을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쉽게 생각했었나봐요. 그 때 전 교장선생님 출신이었던 공장 상무가 연극영화과를 다니면서 교직이수를 하면 국어선생님이 될 수 있으니 부모님을 설득해보라 하더군요. 그 덕분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연출을 하고 싶은 박 대표였지만 그 당시 사람들은 '남자도 하기 힘든데 여자가 무슨 연출을 하느냐'며 비웃곤 했다. 하지만 꼭 해내고 말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노력했고 당시 호랑이 선생님으로 소문난 이원경 선생의 눈에 띄어 극단 '고향'의 조연출을 맡게 됐다. 1년도 버티기 힘들다는 이 선생 밑에서 4년을 일하고 스승과 함께 명동성당 뒤 삼일로 창고 극장 창단 멤버가 됐다. 뿐만 아니라 대학교 4학년 때 '둘이 서서 한 발로'라는 작품을 통해 연출가로 정식 데뷔 했다. 국내 연출가 가운데 특히 여성이 세운 최단 데뷔 기록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10년 뒤 그는 한국 연극의 한계를 느끼고 외국의 연극을 직접 보겠다는 각오로 유학길에 오른다. 5개월동안 머물면서 견문을 넓히고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그 곳에서 교육 연극에 눈을 뜨게 됐고 5년동안의 유학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 내가 사는 이유

다사다난했던 유학생활이었다. 쓰러져 졸도할 만큼 두 차례의 고비가 있었지만 그의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 "대학 4년과 유학생활 5년은 제 인생에서 1분 1초의 시간도 허비한 적 없는 순간이에요. 정말 열심히 살았죠. 열심히 일해서 학비를 마련하고, 하루에 최소 3편의 작품을 보면서 연출을 연습하고 공부했습니다."
이후 한국에 돌아와 그 곳에서 보고 익힌 교육연극 전파를 위해 앞장섰다.
"교육연극은 관객 앞에서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일반 연극과 달리 과정을 중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함께 작품을 구상하고 연습하고 결과를 토론하면서 사회화를 배우죠. 스스로 결정하고 그 의지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워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용현성당 지하 시민교육연극센터는 바로 박 대표의 꿈을 실현하는 공간이다. 교육연극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남구청 지원을 받긴 하지만 애당초 기관 지원을 목표로 출발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박 대표 혼자 물심양면으로 애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안 살림을 내와 공간을 꾸민 것은 물론 아침부터 밤까지 혼자 시연센을 지키고 바닥 청소에 화장실 청소까지 약 30년 전 막내 단원으로 하던 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 그다.
"이 정도는 일도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좀 더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지 않았느냐 묻기도 하지만 전 지금이 행복해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그걸 제가 하고 있잖아요. 다만 이제 바라는 건 이 공간이 원래 성격 그대로 운영할 수 있는 후배에게 넘겨주는 것 뿐이에요."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라는 격언 그대로 살고있는 박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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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시민교육연극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