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이 돌아왔다. 조연으로 줄연했던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감독) 이후 근 4년 만에 일반 관객들과 조우하게 된 것. 지난 해 13회 부산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였던, 전수일 감독의 '바람이 머무는 곳, 히말라야'(이하 '히말라야')를 통해서다. 최민식이란 이름에 비하면 상영 스크린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전국 28개다. 하지만 이 땅의 대표적 저예산 작가 감독의 영화치곤 적잖은 수다. 인천의 영화공간 주안도 그 중 하나다. 최근 결성된 한국예술영화관협회의 첫 배급작이란다.
감독과의 친분이나 최민식 팬이라는 사실 등 외에도, '히말라야' 개봉이 남다른 감회로 다가서는 까닭은 '제작고문'으로 동참해서이기도 하다. 밝히기 다소 쑥스럽긴 하나, 최씨를 주연으로 전격 제안한 것은 나였다. 변화에 변화를 거듭한 시나리오를 처음 읽으며 최씨를 떠올렸고, 내친 김에 제안을 했던 것이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나는. 내 제의를 들으면서, 당시 감독이 지었던 그 황당해하던 표정을.
그럴 만도 했다. 최씨의 출연료가 제작비를 상회한다고 했으니. 그때 책정되어 있던 순제작비가 5억 전후였는데, 그의 몸값은 5억 플러스 알파라지 않는가. 게다가 주연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난 확신했다. 만약 최씨가 시나리오를 읽기만 한다면, 틀림없이 하겠다고 하리라는 것을. 구두 상 약속이 되어 있다는 그 주연도 최씨라면 외려 반가워하리라는 것을.
최민식 같은 '대배우'가 오랜 기간 스크린을 떠나 있다 복귀한다면, 예의 영화들과는 다른, 뭔가 다르고 새로운 작업을 원할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적어도 복귀 첫 작품만은. 그런 점에서 담백할 대로 담백한 '히말라야'는 제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체 시사 후 기자 간담회에서 최씨는 말했다. 마침 네팔을 가고 싶어 하던 차였다고. 히말라야 산을 오르고 싶어 하던 차였다고. 그래, 별다른 고민 없이 결정을 내렸다고….
감독의 암묵적 동의 하에, 내 나름대로 최씨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강의를 통해 선생과 학생 신분으로 만난 제자 겸 후배 프로듀서를 통해서였다. 내 판단은 적중했다. 2개월여의 시간이 소요된 뒤, 시나리오를 읽게 된 최씨가 조건 따위엔 상관없이 "하겠다!"고 나선 것. 주연이 결정되어 있거늘, 그래도 가능한 하고 싶다는 강력한 의사를 피력했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영화가 마침내 관객들과 만나는 것이니 어찌 각별한 소회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개 월 전 이 지면에서도 썼듯, "실직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공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어느 네팔 노동자 유골을 가족에게 전해주기 위해 히말라야 고산 마을을 찾아가는 기러기 아빠 '최'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그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연기를 펼친다. '채움의 연기'가 아니라, 가능한 연기를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비움의 연기'를 구현한다"고. 간만에 최씨가 선보이는 그 인상적인 비움의 연기를 맛보지 않겠는가. 그의 그토록 오랜 부재 이유 등을 짐작케 해줄 터이니 말이다. /영화 평론가·경기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