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찬일의 영화 이야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크리스찬 베일(브루스 웨인 / 배트맨), 히스 레저(조커) 주연의 <다크 나이트>가 3주 연속 국내 박스 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누적 관객 수는 320여 만. 여느 대박작들을 떠올리면 그다지 대단한 스코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작국 미국과 비교해 부진하다 못해 초라하기까지 했던 '배트맨 시리즈'의 지난 흥행 성적을 감안하면 가히 '위력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영화전문 사이트 FILM2.0(www.film2.co.kr)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수치"라고 하겠는가. 그 시리즈의 "어두운 과거를 일거에 씻게 됐다"면서. 대체 어떤 요인들이 <다크 나이트>의 성공을 가능케 한 것일까.

FILM2.0은 "탄탄한 연출력과 히스 레저의 광기어린 연기, 할리우드가 줄 수 있는 볼거리가 결합돼 대중과 마니아 모두를 끌어들인 결과"이며, "또 잘 돼는 영화에 몰려가는 관객 심리 또한 한 몫을 톡톡히 했다"고 진단한다. 다소 소박하긴 하나,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진단이다.

개인적으로는 가히 '경이적'이라 할 내러티브의 힘을 덧붙이련다. 영화의 극적 호흡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영화는 결코 짧지 않은 2시간 30분여가, 마치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유려한 리듬을 타고 시종 달린다. 지금껏 본 국내외의 그 어떤 영화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가히 '완벽하다'는 평가가 과장이 아닐 만큼의 놀라운 페이스(pace)로 펼쳐지는 것이다.

내 개인 홈피에 밝혔듯이, <다크 나이트>는 2000년대 들어 새로워지고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어떤 경향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문제적 오락 영화다. 스펙터클 위주의 물량 공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층위에서도 기대 이상의 수준을 구현하는 새 흐름이랄까. 최근 선보였던 <트랜스포머> <아이언 맨> 등이 그 단적인 예들이다. 이들과 1990년대의 대표적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였던 <인디펜던스 데이>(롤랜드 에머리히)를 비교해보라.

영화의 메시지ㆍ주제의식도 그리 녹록치 않다. 지독한 미국중심주의요 영웅예찬이군, 이라며 외면ㆍ무시하기 불가능하다. 물론 영화가 다분히 '미국적'이긴 하다. <다크 나이트>는 항상 다양한 영웅 서사와 함께 살아온 미국인들, 나아가 서구인들의 입맛에 맞는 텍스트인 것이다. 영화가 이곳에서는 북미 지역에서처럼 기록적 흥행 레이스를 펼치리라 기대하지 않은 것은 그래서였다. 게다가 전문가적 관점에서 영화에 광분할 생각도 없었다.
그럼에도 최상의 경지를 구현한 플롯은 말할 것 없고, 등장인물들의 성격화나 연기 연출, 단 한 시도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어떨 땐 후면에 머물고 어떨 땐 전면으로 나서는 음악 효과 등 영화의 숱한 덕목들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특히 플롯 층위에서는 단지 미국만이 아니라 세계 영화의 모범적 텍스트로 간주될 법하다. 세계의 숱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 및 감독들을 좌절시킬 성도 싶다.

흥미롭지 않은가. 으레 스펙터클로 승부를 걸곤 하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가 이처럼 기념비적 경지의 내러티브를 구현했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메멘토>(2000) 같은 지독히도 실험적 영화로 세계 영화팬들을 경악시켰던 문제적 작가 감독이 이처럼 '웰-메이드' 대중 영화를 빚어내 단연 주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