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기업 사장 인선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인선 지연에 따른 업무공백과 `낙하산 인사' 논란이 이어지면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일 정부 부처들에 따르면 핵심 공기업 24곳 가운데 20곳 이상에서 사장을 선임하는 등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주요 기관장 인사가 대부분 마무리됐다.

   인선 과정에서 정부는 주요 공공기관 90여 개를 '공모제 활성화 기업'으로 지정하고 기관장으로 민간 전문가를 선임해 낙하산 시비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적지 않은 기관에서 낙하산 또는 보은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전체 305개 공공기관 가운데 기관장 200명이 사직서를 제출해 대규모 인력시장이 섰지만 인물난과 인선 과정의 잡음으로 재공모 사태가 속출했으며 반년 가까이 경영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정부는 공모절차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면서 업무 공백 뿐아니라 정치권 줄대기 같은 부작용도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해 향후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른 임원 선임 절차를 단순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책을 검토하고 있다.

   ◇ 에너지는 기업출신..무역 쪽은 관료출신
한전은 20일 오전 주주총회에서 김쌍수 LG전자 고문을 사장으로 공식 선임한다.

   앞서 19일에는 석유공사 사장으로 강영원 전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이 임명장을 받았고 석탄공사 사장에 조관일 전 강원도 정무부지사가 취임했다.

   지역난방공사는 지난 14일 주총에서 현대건설 발전사업부문장과 GS건설 고문을 역임한 정승일 씨를 사장으로 선임하기로 하고 정부에 임명제청을 요청했다.

   가스공사의 경우 아직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주강수 전 현대자원개발 대표이사와 이승웅 전 삼성물산 상사부문 대표 등이 유력하며 다음달 29일 주주총회에서 선출한다.

   이에 따라 에너지 공기업은 상황에 따라서는 LG와 대우, 현대, 삼성 등 4대 그룹 출신들이 나눠갖는 구도가 될 수 있다.

   반면 무역 관련 기관장 자리에는 지식경제부 출신 관료가 채워질 전망이다.

   지식경제부의 전신인 산업자원부에서 차관을 역임한 조환익 전 수출보험공사 사장이 코트라 사장을 맡았고 수출보험공사 사장의 경우 유창무 무역협회 부회장과 김칠두 전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등 산자부 출신 간에 2파전 양상을 띠고 있다.

   ◇ 끊이지 않는 낙하산.보은인사 논란
참여정부의 '코드인사' 논란을 제기했던 한나라당이 집권했으나 공공기관장 인선에서 낙하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4.9 총선의 낙천.낙선자에 대한 보은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조폐공사 사장에 전용학 전 한나라당 의원이 지난 6일 임명되면서 낙하산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전용학 사장은 지난 총선에서 천안 갑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했다.

   지난달 25일 선임된 이이재 광해관리공단 이사장도 지난 총선에서 동해.삼척에 공천을 신청했다가 떨어진 인물이다.

   낙하산 인사 시비가 가장 먼저 터져나온 곳은 금융공기업이다.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이면서 영남 출신인 데다 서울시향 대표를 역임한 경력이 있어 이른바 `고소영'과 `S라인'에 모두 걸쳐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또 이 대통령의 대선 당시 대구 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한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데 따른 보상 차원으로 신보 이사장을 맡게 됐다는 논란을 불렀다.

   이에 대해 안 이사장은 "국회의원 생활 12년 가운데 7년을 재경위에서 활동하면서 국정감사와 업무현황 보고 등을 통해 신보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며 "따라서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낙하산 인사라는 것은 너무 편향된 지적"이라고 반박했다
재공모가 진행중인 한국전기안전공사의 경우 낙천자끼리 경합하고 있다. 사장 후보 4명 중 임인배 전 한나라당 의원과 조명구 17대 대선 한나라당 선대위 언론특보가 각각 김천과 영등포을에서 낙천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토지공사 이종상 사장과 도로공사 류철호 사장, 철도공사 강경호 사장, 방송광고공사 양휘부 사장, 인천항만공사 김종태 사장 등도 초기 낙하산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들이다.

   기관장처럼 드러나지는 않지만 실속 있는 자리인 감사도 정치권의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한나라당 부대변인을 지낸 정광윤 가스공사 상임감사위원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낙천했고, 김주완 한국전력기술 감사 역시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대전 선대위 대변인과 인수위 자문위원 경력이 있다.

   또 지난 14일 한국지역난방공사 감사에 선임된 조영래 전 새마을운동중앙회 감사는 한나라당의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다.

   ◇ 재공모 속출..경영공백 장기화
기관장의 무더기 사표에 따라 동시다발적으로 공모가 이뤄지자 인력풀의 한계로 재공모 사태가 속출했으며 인선이 늦어지면서 공기업들은 사업집행에 차질을 빚었다.

   지식경제부의 경우 산하 '빅 5' 공기업인 한전과 가스공사, 석유공사, 코트라, 수출보험공사 모두 사장 공모를 두 번 치렀다.

   한전의 경우 1차 공모에서 임원추천위원회가 공공기관운영위에 추천한 최종 후보 5명이 모두 한전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재공모 결정이 내려졌다.

   수출보험공사는 임추위 자체에서 적임자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면접심사를 통과한 후보를 인사권자에 추천하면서 재공모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재공모에서는 정부가 유력 인사의 영입을 추진해 '무늬만 공모'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코스콤은 정연태 사장이 낙하산 인사 논란과 자격 시비가 일자 취임 6일 만에 사의를 표명해 재공모가 진행중이다. 정 전 사장은 17대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측의 자문교수진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대형 공기업이 장기간 경영공백을 겪으면서 공사 발주나 사업 집행 등이 늦춰지고 있다. 한전의 경우 공사 발주가 지연되면서 전력설비업체의 수주가 늦춰지는 등 관련 업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보증기금은 5월 20일부터 공모 절차를 시작해 임원추천위원회를 통해 이사장 후보를 4배수로 추렸으나 금융위원회로부터 재공모 지시를 받았다.

   이에 따라 재신임을 받지 못하고 이미 7월 17일로 임기가 끝난 한이헌 이사장이 계속 업무를 보고 있다. 기보는 금융공기업 기관장 교체 작업이 공식화된 지난 4월 중순부터 사실상 경영 공백에 빠져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지난 3월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한 유재한 사장의 후임자를 공모했으나 적임자를 찾지 못하다가 재공모에 착수, 헤드헌터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넉 달 만에 임주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사장으로 선임했다.

   수출입은행은 후보자를 추려낸 이후 한동안 발표가 나지 않아 임기가 끝난 이사 2명이 계속 근무를 하는 등 업무 공백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