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회 글·사진 황규광 동양탄소고문
2007년 8월 10일 (금, 제20일)

나는 호텔이 새로 바뀌면 호텔사진을 찍어두는 습관이 있다. 그러면 여행순서를 기억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늘아침에도 일찍 호텔 앞길을 건너서 호텔을 찍으려고 하니 부근에 있던 교통순경이 재빨리 다가와서 사진을 찍지 못하게 제지한다. 과잉 애국심 때문일까?

바쿠의 남쪽 약 60km에 있는 석기시대의 유적을 보러 가기로 했다. 호텔을 떠나 교외로 나가는 길에는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승용차가 많이 지나다니고 있다.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시내를 벗어나서 해변을 지나니, 이 부근은 유전지대로 수 없이 많은 '원유채굴 탑'이 숲을 이루고 있다. 조금 후 '반 사막지대'로 접어드니 세찬 바람이 불고 있다.

바쿠라는 뜻이 '바람의 거리'라고 하더니 역시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고부스탄(Gobustan)의 석기시대 암각화가 있는 곳에는 1시간 만에 도착했다.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는 바위산 기슭에 석기시대 사람들이 그린 암각화(岩刻畵)가 약 6천개나 발견되고 있다. 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이곳에는 약 1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바위에 그려진 그림은 동물, 사냥장면, 춤추는 사람, 배를 젓는 사람, 의식장면 등 어느 것도 단순하지만 이상한 약동감이 있으며 옛 사람들의 순수한 감성이 전해져오는 것 같다. 인기척 없는 풍경 속에서 이들 그림과 마주하면 마치 오랜 옛날세계로 끌려들어가서 그들과 대면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유적은 벼랑 같은 바위와 동굴, 큰 바위가 서로 엉켜진 복잡한 지형에 있다. 옛 사람들은 이 암벽위에서 들소를 몰아 떨어뜨리기도 하고, 또는 전쟁 때는 이곳을 요새로 이용했을 것이다. 지금은 건조한 땅이지만 당시에는 동식물이 풍부한 생태계였을지도 모른다, 배를 그린 암각화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보면 옛날 해안선은 지금보다는 가까이에 있었을 것이다. 유적의 입구에 작은 박물관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이 부근에서 출토된 활촉, 석기, 토기, 당시를 상상해서 그린,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고부스탄의 암석예술의 문화적 경관'은 2007년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