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하고 아이 아빠가 됐지만 여전히 '이웃집 청년'으로 보인다. 차태현(32)은 무엇보다 친근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배우다.

   그렇지 않아도 착해 보이는 그가 새 영화 '바보'에서도 온 동네에서 바보라고 놀림 받는 청년 승룡 역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 영화는 눈 내리는 겨울이라는 배경이 아니더라도 화면을 새하얗게 색칠한 듯한 착한 영화다.

   더 이상 청년이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30대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기보다 해맑은 웃음과 선한 눈빛의 순수한 역을 다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바보'의 개봉(28일)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갑자기 어울리지도 않는 악역이나 카리스마 넘치는 역으로 확 변신해서 어색함을 주는 것보다 적절히 변화를 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엽기적인 그녀' 이후에 이미지 변신에 대한 질문은 항상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변신하면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제 욕심보다 관객이 제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런 제 이미지가 지겹기만 하면 작품이 끊겨야 하는데 데뷔 14년차인데도 계속 작품이 들어와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송강호ㆍ황정민 선배님에게 어울리는 역을 할 만한 나이는 또 아니죠.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2월 개봉한 트로트 가수 이야기) '복면달호'와 '바보'는 제게 가장 어정쩡한 시기에 잘 만난 고마운 작품입니다."
새 영화 '바보'에서 차태현은 그의 표현대로 '변신'까진 하지 않았더라도 '변화'만큼은 충분히 줬다. 그는 장면마다 꾀죄죄한 얼굴과 지저분한 옷차림에 말을 심하게 더듬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다.

   "연기에 참고할 만한 적당한 모델이 없는 점은 힘들었어요. 모델이라고는 원작(강풀의 동명 만화)의 진짜 승룡이밖에 없는데 만화와 영화는 분명히 다르거든요.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표현하는 완전한 바보로 갈 것인가, 순수함이 넘치는 만화 속 승룡이로 갈 것인가. 감독님과 함께 고민했는데 후자가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강풀 작가가 영화를 보고 '정말 승룡이 같다'고 극찬한 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배우 하지원과 처음 연기했다. 하지원이 맡은 지호는 모든 사람들이 놀리는 바보 승룡이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착한 여자. 차태현은 하지원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이번 영화는 사실 바보 승룡에게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거든요. 그런데 지호는 승룡이가 10년 간 눈이 빠지게 기다린 아름다운 여자여야 했고요. 그래서 톱 여배우들이 이 역을 선뜻 하겠다고 할지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하지원 씨가 원작을 보고 흔쾌히 하겠다고 해서 정말 기쁘고 고마웠습니다."
'바보'는 이렇게 나름대로 '호화 캐스팅'으로 출발해 2006년 완성됐지만 1년을 훌쩍 넘기도록 개봉하지 못하고 대기상태로 기다려야 했다. 작품을 자식처럼 아끼는 배우 입장에서는 당연히 안타까웠을 일이다. 이제야 관객에게 선보일 최종본을 본 소감은 어떨까.

   "해를 두 번 넘기더니 이제야 하게 됐네요. 그래도 이 영화는 겨울에 개봉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얽히고 설킨 관계가 많은 원작을 상영시간 2시간 안에 다 담을 수 있을까, 촬영 때부터 걱정했는데 그 부분이 약간 아쉽긴 해요. 하지만 원작대로만 만들었다는 비판도 있던데 원작에 충실한 게 흉이 될 수 있나요? 좋은 원작이니까 잘 살린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영화 '바보'와 '복면달호' 이후 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를 찍었고 지금은 라디오 프로그램 '안재욱 차태현의 Mr.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차기작을 고르는 중이다. 친근한 이미지를 쉽게 내버리지 않으면서도 늘 '변화'를 고민하는 그의 새로운 변신을 기대해 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