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향교
부평향교 외삼문의 모습. 이 곳을 출입할 때는 동립서출 이라 해서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와야 한다. 가운데 중문 은 신 만이 출입할수 있으며 석전대제 와 같은 행사 때만 문을 열어놓는다.
'부평향교'는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경인교육대학교를 등지고 150m쯤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던 '명륜당', 공자와 같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 등 부평향교는 모두 10개의 건축물로 이뤄졌다. 부평향교는 고려 인종5년(1127)에 건립했으나 조선조 인조5년(1636) 병자호란 때 불에 타버렸다. 지금의 건물은 숙종14년(1688)에 재건한 것으로 인천시 유형문화재 12호로 지정돼 있다. 1906년 보통학교령이 공포되면서 교육기능을 마감했으며 성현의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만 기능하고 있다. 지금 이 곳에선 매년 봄 가을로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으며,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이용되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부평향교는 바로 옆에 현대식 회관을 짓고 도의와 윤리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3층 건물인 회관은 사무실, 충효교실, 회의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일반인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문, 한글, 서예, 예절, 다도 등을 가르친다.
부평향교는 1943년 지금의 문학동에 있는 '문학향교'의 위판을 부평향교에 입감한 뒤 '인천향교'라 이름을 붙였으나 1945년 문학향교를 복원한 뒤 다시 '부평향교'로 이름을 바꿨다.
부평향교는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동재, 서재, 명륜당, 교직사, 외삼문, 홍살문 등으로 이뤄졌다. 이들 건물들이 평면으로 보기에 전후좌우에 매우 규칙적이고 짜임새 있게 배치돼 들어가서 관람하다 보면 깔끔한 인상을 받는다. '부평읍지'에 따르면 '전사청'과 '공수고'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명륜당'은 팔작지붕 형태를 띠고 있으며 지붕의 귀가 용머리 모양을 띤다. 유생들이 사서오경을 공부하고 강독하며 초시분비와 향음주례를 비롯해 각종 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학생 정원은 72명 이었다.
'대성전'은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5성위와 정·주양공, 그리고 이 이, 정몽주, 최치원 등 한국 18현의 위판을 모신 사당이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초정일에 석전을 드리고 매월 삭망 때 분향례를 올린다. 대성전 양 옆에 있는 '동무'와 '서무'는 한국 18현 가운데 동배향의 9현의 위판을, 서배향의 9현의 위판을 각각 모셨던 곳이다. 해방 뒤 성균관의 유림들이 "우리 선현들을 큰 사당에 모셔야 한다"는 뜻을 모아 대성전에 모시게 됐다.
'내삼문'은 대성전과 동·서무를 출입하는 문이다. 동쪽협문은 들어가는 문이며 서쪽협문은 나오는 문이다. 중문은 '신문'으로 행사 때에만 열어둔다.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기숙사로 먼 지역에서 공부하러 온 사람들이 공부하며 기숙하던 곳이다.
'외삼문'은 교궁을 출입하는 바깥문이며 '홍살문'은 향교 영역의 표시로 양반, 평민을 막론하고 신분을 떠나, '말에서 내려서 들어가는 문'이라 해서 붙인 이름이다 /글·사진=김진국기자(블로그)freebird.

 


▲ 찾아가는 길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부평IC에서 계양구 계산동 방면으로 직진하다가 경인교대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교대 입구에서 정문을 등지고 200m 정도 직진하면 부평향교가 나온다. 지하철을 이용할 사람은 인천지하철 1호선을 타고 경인교대 역에서 내려 경인교대방면 출구로 나오면 된다. 버스는 부평방면에서 30·32·45번을 타면 되며, 마을버스는 23번을 타고 인천교대 앞에서 내리면 된다. 032-541-2941, 2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