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 중구, 근대건축물 거리(하)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한 세기 전, 인천부청사로 쓰였던 인천중구청을 등지고 언덕길을 내려온다. 20여m쯤 가다 작은 사거리. 왼쪽에 이끼 낀 석축건물이 서 있다.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이다. 이 건물은 1890년 10월 지은 '일본18은행 인천지점'으로 얼마전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서 만난 내부는 온통 유리로 반짝거린다. 전시관 내부는 개항 당시 인천항, 1920년대 인천항과 중구의 모습, 근대건축물 축소모형 등을 백화점식으로 진열하고 있다. 이 곳은 1936년 조선식산은행 인천지점, 1954년 한국흥업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다 개인소유였으나 중구가 사들여 전시관으로 꾸몄다. 박물관 왼편, 야외휴식공간 옆으로 보이는 건물도 예사롭지 않다.
나뭇잎으로 만든 옷을 입은 것처럼 건물 전체가 덩굴잎으로 뒤덮인 이 건물은 '일본58은행 인천지점'이다. 지금은 인천 중구 요식업조합이 쓰고 있지만, 일본 오사카가 본점인 일본58은행이 인천지점으로 세운 건물이다. 발걸음을 차이나타운 쪽으로 돌린다. 저쪽 500m 지점에 르레상스식 석조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1882년 세운 '일본제1은행 인천지점'이다. 서울의 중앙청을 축소해 놓은 듯한 이 건물은 은행과 조달청, 등기소로 사용돼다 지금은 민간인 전시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이 건물은 '최초, 최고사 박물관'으로 태어날 예정이다. 차이나타운 방향 쪽으로 20여m 떨어져 있던 '대불호텔'은 흔적만 남았다. 건물 한켠 기둥만 남은 대불호텔 자리에선 지금 작은 수공업체가 제품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다. 반경 50m 안에서 역사적 건물 여러개를 한 번에 목격한다는 것은 사실 버거운 일이다. 이 건물들 가운데 하나만 만났다 하더라도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국지계를 지나 중국인들이 살던 차이나타운으로 접어든다. 지금도 이 곳엔 수백 여명의 화교가 삶터를 일구고 있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은 '화교학교'다. 개항 당시 화교학교는 청국영사관이었다. 교문을 열고 안쪽을 들여다본다. 농구를 하는 아이들, 정신없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학교풍경은 어디나 똑같다. 초여름의 햇살처럼 꺄르르 웃음을 머금은 채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교복 입은 아이들에 떠밀려 발걸음을 돌린다. 그렇게 닿은 곳은 자장면의 원조라는 '공화춘'. 나뭇잎들은 '春和共'이란 한자간판을 반쯤 가리고 있다. 폐허처럼 방치된 이 곳 역시 일본제1은행처럼, '자장면 박물관'으로 계획돼 있다.
그렇게, 100년 전 조상들이 보았던 것을 만나고, 선조들이 걸었던 길을 걷고나니 만감이 교차한다. 이 거리에선 얼마나 많은 역사와 사연이 지나갔을까. <관련기사 20면>
/글·사진=김진국기자 (블로그)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