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 강화 은암자연사박물관
겉으로 봐선 특별할 게 없었다.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건물 외벽. 마당에 널브러진 돌멩이와 나무토막. '안은 다르겠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르긴 조금 달랐다. 1억7천만년 전의 나무화석, 철갑 모양의 등을 가진 아르마딜로의 박제, 희귀 곤충들이 눈에 띄었다. 폐교를 개조해 지은 박물관은 낭만적이라기보다 허술해보였다. '전시'가 아닌 '방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전시실은 그러나 '강화은암자연사박물관'(이하 박물관)의 전부가 아니었다.
"이건 아무것도 아뉴, 이리 와보슈." 관장을 따라 전시실을 빠져나왔다. 그가 굳게 닫혔던 창고문을 열었다. 순간, 입이 '딱' 벌어졌다. 그 곳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보물창고'였다. 공룡이 대륙을 질주하는 것처럼, 영화 '쥬라기공원'과 '박물관이 살아있다'에 나온 장면들이 머릿속을 마구 뛰어다녔다.
창고는 모두 7개. 하나 하나 문을 열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드러났다. 박물관 창고들은 한마디로 '지구탄
생의 비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첫 번째 창고를 들여다 본다. 공룡화석이 가득하다. 저건 공룡의 새끼인가. 개 만한 크기인데 가장 무시무시한 공룡으로 알려진 티라노사우루스 모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티베트에서 나온 공룡의 한 종류일 뿐 새끼공룡은 아니다. 그 옆에는 그 만한 크기의 공룡머리뼈가 놓여 있다. 어른 팔뚝만한 이빨, 무더기로 뭉쳐진 알들도 보인다. 공룡알 화석은 특히, 뼈 보다는 화석으로 남을 가능성이 훨씬 적어 진귀한 유물로 여겨진다.
또다른 창고는 박제로 가득하다. 독수리보다 더 큰 갈매기 알바트로스는 금방이라도 훨훨 날아오를 것처럼 날개를 펼쳤다. 드라큐라처럼 생긴 관박쥐는 재밌는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일명 '황금박쥐'로 불리는 종이다. 나머지 창고들 역시 마찬가지다. 생전 듣도보도 못했던 진귀한 유물들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이처럼 박물관이 보존한 유물은 수십여만 점에 이른다.
창고를 모두 돌고 마당 한 가운데로 나온다. 따스한 봄햇살 때문인가, 현란한 유물의 향연을 목격한 탓인가. 머리가 아찔하다. 주마간산으로 훑어보았는데도 어느덧 세 시간이 지났다.
수억년 전 지구에 살았던 생명체와의 만남은 '즐거움'보다는 '충격'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 싶다. 지금은 '방치'(유물가치와 보관상태를 놓고 볼 때 방치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다)됐지만 이 유물들은 앞으로 깨끗한 자리를 찾아갈 전망이다. 강화군이 고인돌공원 옆에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인류가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그래서 과거의 흔적을 가치있게 다루는 것은 그 속에 미래 삶에 대한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의 아름다운 재회'를 기다리며 박물관 문을 나선다. <관련기사 20면>
/글·사진=김진국기자 (블로그)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