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도시문화탐사대 ⑪ 장수동 만의골
800년 된 은행나무의 위용.
인천일보와 인천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도시유목2'를 떠난 인천도시문화탐사대(탐사대장 민운기)는 지난 17∼18일 장수동 만의골 탐사를 끝으로 3달간의 도시유목 탐사일정을 모두 마쳤다.

# 마지막 탐사지, 만의골
봄볕이 따뜻하게 내리 쬐는 토요일(17일) 오전, 30일에 걸친 이번 탐사의 마지막 대상지인 남동구 장수동의 만의골로 향했다.
이제는 탐사대의 팀원이 되어버린 듯 운송을 담당한 기사아저씨의 손놀림에도 여유로움과 느긋함이 배어 있었다. 텐트와 짐을 실은 트럭은 남동구청을 지나 수인산업도로 초입으로 향했다.
장수동 인천대공원을 끼고 돌다 경기도 시흥시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삼거리에 이르면 운연동과 만의골 입구라는 좌회전 이정표가 나온다.
길을 따라 1㎞ 정도 들어가면 머리 위로 이 마을을 가로지르는 외곽순환고속도로가 보이고, 그 아래를 지나자마자 좌회전 해 들어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장수동 만의골에 이른다. 이곳 만의골은 인천시와 경기도 시흥시와 부천시에 맞닿아 있는 자연녹지보전지역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개발이 금지되어 있어 인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 속 오지였다. 그 덕분인지 이제 이곳은 평일과 휴일이 따로 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나들이의 명소가 되었다.

비닐하우스 음식점에 둘러싸여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과수원의 모습이 오늘의 만의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주객이 뒤바뀐 만의골
만의골 입구 노변에는 등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타고 와 주차해 놓은 자동차들로 빈틈이 없다. 길을 따라 들어가면 옛 농가를 개량한 식당들이 보인다.
그린벨트 지역이라 증축이나 개축이 금지되어있으니 처마를 넓히고 창고를 개조하고, 때론 비닐하우스를 식당으로 사용하는 편법적 확장이 마을의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 지어 울긋불긋 간판을 크게 세운 식당들도 보인다. 예전에는 길손들의 그늘 막으로 나무의자 한두 개 놓여있었을 법한 나무아래 평상을 여러 개 설치해 놓고 성업 중인 음식점은 출출한 배를 채우려는 등산객들로 붐빈다.
뭐니뭐니해도 만의골의 명물은 8백년 된 은행나무이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한눈에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거목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하늘을 향해 널찍이 뻗어 올린 수많은 가지들 하며, 몇 사람이 팔을 벌려도 가늠하기 어려운 이 나무는 시에서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세월의 켜를 한자리에서 묵묵히 품어 안은 널찍한 모습은 이곳 만의골의 진정한 주인으로서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매년 칠월이면 이 은행나무 앞에 고사상을 차려놓고 제를 지낸다 한다. 지금은 그 규모가 작아졌지만 과거에는 소를 잡아 제를 지낼 정도로 큰 마을 축제였다고 한다.

탐사를 모두 종료하며 격려차 방문한 손님 및 기사아저씨와 함께 기념촬영.

# 그린벨트? 행락지?
탐사대가 텐트를 세운 곳은 제법 큰 음식점이 들어선 뒤쪽 공터이다. 예전에는 밭으로 쓰였던 곳 같은데, 이제는 농사를 짓지 않는지 지난해 자란 들풀만 말라 쓰러져 있었다.
농토는 대부분 외지인들 소유이며 동내 사람 몇몇이 소일삼아 농사를 짓고, 그 외 도시민들의 주말농장으로 소비되고 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도 살기는 다른 곳에서 살며 출퇴근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하니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수 백 년을 이어온 농촌마을이 이제는 그것을 밑천 삼아 상업지역으로, 도시민들의 행락지로 땅의 주인과 쓰임새가 뒤바뀌는 형국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간간히 오가는 등산객들에게 고작 담배나 음료수 등을 팔던 구멍가게가 전부인 곳이었다.
그러다가 도로가 포장되고, 주 5일제 근무의 여파로 인천대공원을 찾는 사람들과 등산객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상대로 한 음식점이 잘 되기 시작하자 한두 집 가게가 늘더니 점차 행락지의 모습을 띠게 되었고, 마을 주민들도 농사보다도 훨씬 이문이 남는 장사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주민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사람들도 이곳에 들어와 큰돈을 들여 음식점을 짓고 장사를 하고 있다.
경쟁적으로 장사를 하다 보니 같이 쓰던 집 앞 마당에는 주차를 위한 금이 그어지고 울타리가 쳐지기 시작하였다.
이웃 간의 왕래도 전 같지 않다. 모양새만 전원의 풍경이지 도심 속 번화한 상업지구와 별반 다를 게 없을 듯싶다.
그나마 물어물어 찾아간 '원조 뚱순이네 아주머니'를 통해 자본을 향하지 않는 시선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공공적일 수 있는지를 확인하며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등산객들과 음식점들로 즐비한 휴일의 만의골 풍경.

# 탐사를 마무리하며
이틀이라는 짧은 체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탐사대는 이곳 만의골에서 자본에의 욕망이 전형적인 농촌마을을 어떻게 변질시켜가고 있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도 없이, 이는 도시 문명이 만들어 낸 잉여의 산물 내지는 결핍의 요소들이 미래가 불투명한 오늘의 농촌 현실과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공동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탐사대는 기존의 도심은 물론 도시의 확장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예측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여전히 그 원인은 어떤 중심 내지는 진원지로서의 도시의 논리에 있지 않나 싶다.
도시를 움직이는 제반 힘의 움직임과 거기에서 드러나는 온갖 맹점들을 냉정히 바라보고 주시해나가는 순간부터 우리의 공동체적 삶은 다시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800년 동안이나 모진 세월의 풍파를 거쳐 지금껏 지탱해왔는데 기껏 100년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행여나 가지가 부러지지 않을까, 파이프 고리로 꿰매고 떠받쳐 놓은 은행나무의 모습을 보며 여전히 자연의 저력을 믿지 못하고 인간의 협소한 판단만이 유효한 잣대로 기능하는 오늘의 모습을 씁쓸히 되새기는 가운데 우리는 또 다른 출발을 위해 만의골을 떠나야 했다. <끝>
/글·사진=인천도시문화탐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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