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숨쉬는 인천여행 시리즈 배다리 … '노스탤지어'로의 여정
색동골무, 모서리가 닳은 책들…. 인천은 지금 '신개발주의'로 질주하고 있지만 '배다리'는 언제나 고향의 색감 그대로다. 품격 높은 전통공예품과 유구한 역사의 헌책방, 천정에 닿도록 쌓아놓은 옷가지로 어두컴컴한 양키시장까지, 배다리는 '늙지 않은 과거'의 모습으로 현재속에 존재한다. ''노스탤지어'로의 여정'이 사방으로 펼쳐진 곳. 그 곳이 바로 배다리다.
답사를 시작한 곳은 '전통공예상가'. 평일 한낮이라 그런걸까. 지하에 위치한 전통공예상가는 너무 조용하다. 천천히 걸으면서 두리번거린다. 작가들은 작품에만 집중할 뿐 오가는 사람들에겐 관심을 안 보이는 눈치다. 잔잔한 미소 속에 빛나는 눈. 자신의 세계에 천착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다.
한지로 만든 찻잔과 바구니는 막 쓰기엔 아까운 예술품으로 보인다. 인두로 지져 그리는 낙화는 전국적으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예술품이다. 가게 안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수작업의 섬세함과 예술적 열정이 듬뿍 묻어있다. 곰곰 생각해본다. 열쇠고리, 인형, 전국 어디서도 천편일률적인 관광상품을 이처럼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우리 전통공예품으로 바꾸면 관광지 이미지가 한층 높아지지 않을까.
입구 반대편으로 나와 양키시장 방향으로 걷는다.길가는 온통 '그릇백화점' 세상이다. 제상에 올리는 목기에서부터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얼마전 붐을 일으킨 바 있는 노란 양은냄비 등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인천의 대표적 향토극장이었던 미림극장은 오래전에 셔터가 내려진 모양이다. 셔터 안쪽 공간, 두텁게 쌓인 먼지 위로 종이컵과 비닐봉지가 뒤엉켜 있다. 신자유주의, '멀티플렉스' 앞에서 지역극장은 거의 소멸됐다. 세상은 점점 '대자본'과 '소비자'로만 양분돼가고 있다.
미림극장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중앙시장이 나온다. 일명 '양키시장'이다. 로션, 커피, 캐러멜 등 인천항을 드나들던 외국인들이 가져온 물품을 손수레 가득 쌓아놓고 팔았던 이 곳은 지금 대부분 옷가게로 바뀌었다. 신발, 벨트 가게도 종종 눈에 띈다.
양키시장 안쪽, 한복가게가 길게 늘어선 길을 따라 '헌책방거리'로 향한다. 거리라고는 하지만 집현전, 대창서림, 아벨서점, 삼성서림, 한미서점, 오래된책집 등 6곳 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헌책방의 매력이 싼 가격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헌책방은 말하자면, '지식과 영혼의 골동품가게'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절판됐거나 대형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책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벨서점은 오래된 책을 전시하는 '아벨전시관'까지 운영 중이다.
배다리 일대를 한바퀴 돌고나니, 마치 70~80년 대 거리풍경을 지나온 기분이다. 디지털 시대를 컴퓨터처럼 사는 현대인에게 한겨울, 뜨끈뜨끈한 오뎅국물같은 온기를 주는 곳. 우리들 마음의 고향 배다리여, 영원히 그 모습으로 남아주기를…. <관련기사 20면>
/글·사진=김진국기자 (블로그)free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