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교사 산악모임 `어진뫼'
 ‘어진뫼’. 너무나 평화로운 이름이다. 말 그대로 착한 산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인천교사 산악 모임인 ‘어진뫼’에는 1천500여명의 현직 교사가 해직된 상처 속에서 다시 태어난 우리나라 민주교육사의 아픔이 담겨있다.
 “1999년 7월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화된 것을 기념, 7월4일 인천의 진산 계양산 정상에서 인천지역 선생님과 가족 등 20여명이 인천의 머리글자인 어진 인(仁)자와 산(山)의 고어인 뫼를 합쳐 ‘어진뫼’란 친목단체 결성식을 갖게 됐습니다”
 어진뫼를 이야기하는데 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지부장인 도성훈(44) 선생을 빼 놓을 수 없다.
 89년 전교조 결정 뒤 전국에서 1천500여명의 교사들이 사랑하는 학생들을 뒤로 한 채 학교 현장에서 쫓겨나는 과정에서 도 선생님도 졸지에 실업자로 전락했다.
 이후 전교조 상근이라 미명(?)하에 현장조합원이 조합비와 후원금으로 해직교사들의 생활을 도왔고 도 선생님은 없는 살림에 등산화를 구입, 동지들과 틈틈이 산행으로 아픈 마음을 달래며 교사산악회의 싹을 키우기 시작했다.
 “99년 강화에서 인천시내로 전근 온 이제은(당시 남동중) 선생이 산에 관심이 많아 함께 산악회 구성을 논의하게 됐습니다. 최초 산행에는 저를 포함 3명의 교사가 참여했는데 어진뫼가 이제 전교조 인천지부의 대표적 참교육공동체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습니다.”
 반복되는 학교생활에 찌든 영혼을 바람에 맑게 씻는 한편 팍팍한 투쟁과정에 지친 조직에 활력을 제공키 위해 만들어진 ‘어진뫼’는 결성 1개월만에 지리산을 등반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산행을 통해 묵묵히 골짜기마다 사람들을 품은 산이 겸손함을 보이지 않으면 무서운 존재로 돌변한다는 것을 배웠다. 산이 사람 사이를 잇고 자연과 사람을 연결해 주듯 산행을 통해 조합원들의 뜻도 이어 나갔다.
 멀쩡한 선생님이 하루 아침에 ‘빨갱이’로 몰리는 현실 속에서 교사들은 자연 속에서 땀방울을 흘리며 진정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참교육’에 대한 원칙을 곧추 세웠다.
 자연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자연 속에서 사람과 접근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다.
 2002년 여름 강원도 두타·청옥산 등반에서는 밤차로 여행을 하는 관계로 도시락을 제대로 준비치 못해 대원들이 아사(餓死) 직전(?)까지 가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03년 월출산 겨울 산행에서는 갑작스런 눈보라를 만나 눈에 뵈는 게 없었으나 어린이 등산객들이 아무 불평 없이 회장단의 지시를 이행, 무사히 하산할 수 있었다.
 갖가지 곡절을 겪으며 어진뫼 등반대장은 타 전문 등산모임에 잠입(?), 등산의 기본을 벤치마킹하는 등 반 프로 산악인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어진뫼에는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인천교사와 가족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 함께 한번 산행을 하면 평생회원이다. 회비도 강제력도 없다. 사람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생도 참여가 가능하다. 따라서 어진뫼는 느리고 자율산행을 중시한다. 그렇다고 모임 자체가 엉망은 아니다. 5년 간 노하우가 쌓여 어느 산악회보다 무리없이 산행을 마무리한다. 이미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등 전국 50여개 주요 산을 섭렵했고 이미 거쳐간 회원수가 수백명을 훌쩍 넘겼으나 회원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둘째 1년에 한번 인천에 있는 산들을 등반한다. ‘주인없는 도시’란 오명으로 정체성 부재를 질타받고 있는 인천이기에 ‘인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인천의 주인’이란 생각으로 매년 6월은 인천의 산을 정해 곳곳을 살핀다. 그 동안 계양산에서 소래산까지 종주 산행, 만월산의 달빛산행 및 무의도 답사 등을 통해 아는 것만큼 인천을 사랑하게 됐다. 산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작은 뒷동산까지 찾아다니며 도로와 아파트 공사로 끊기고 패인 인천의 아픔을 느끼고 있다.
 셋째 매년 추모산행을 한다. 공안정국 속에 투옥과 해직으로 독재에 맞서다 90년 전교조 깃발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겠다며 해외원정에 나섰던 이상구·이석주 선생님이 눈사태로 불귀의 객이 된 것을 잊지 않으려고 매년 9월 둘째주 두 선생님의 추모동판이 새겨져 있는 북한산 인수봉에서 추모제를 지낸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있는 산을 등정하기 위한 준비활동에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회원은 많지 않지만 백두산 및 금강산은 물론이고 우리 산하의 반쪽을 찾아 남북이 한민족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 어진뫼의 바람이다.
 어진뫼 탄생의 산파역할을 했던 이제은 선생님은 반려자인 최혜랑 선생님을 산행을 통해 만나는 등 어진뫼는 많은 전설을 낳고 있다.
 “전교조 합법화 과정에는 일반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이란 또 다른 아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97년 전교조 합법화 투쟁이 민주노총 총파업 투쟁의 파고를 거치면서 98년 노동자 구조조정안과 맞바꿔져 99년 1월 교원노조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니까요. 전교조의 합법화를 기념해 탄생한 어진뫼는 수많은 해직 노동자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도성훈 지부장은 때문에 참교육 세상이 올 때까지 ‘어진뫼’를 떠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도 지부장은 어진뫼 결성 당시나 지금이나 등반에서는 후미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김기준기자 gjkim@incheontimes.com
 
 사진설명
 어진뫼2:인천교사산악회인 어진뫼는 가족들과 함께 산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올 초 강원도 평창 계방산 정산에 올라 기념촬영을 했다.
 어진뫼1:1999년 7월 어진뫼 창단 멤버들이 인천의 진산인 계양산에서 결성식 갖고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