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임미자 어진뫼 회장
 “2004년 10월20일 오후 남부군의 발자취가 돌부리마다 묻어나는 곳, 피아골은 한창 핏빛으로 물들어 아름다움을 넘어 이미 슬픔에 이르고 있었어요…중략…식사를 마치고 나니 오후 6시 반쯤 지났을까? 사위는 벌써 어둠으로 물들어 갑자기 막막해졌어요. 문명이 인간에게 내린 죄악 중의 하나가 어둠을 못 견뎌하게 만들었다는 것. 야, 뭘 해야 하냐. 전깃불도 안 들어오고 TV도 없고 그렇다고 책도 안 가져왔는데…너무나 막막해서 홍차를 끓였어요. 식탁위 빨랫줄에다 랜턴을 매달고 차를 마시는데 청년이 다가왔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되었어요. 산골 작은 산장의 불목하니 청년과 사업이 어긋나 잠시 떠나온 아저씨와 별 볼일 없는 중학교 국어선생과 조용한 주부 한 사람. 서로 통성명 같은 거 안 해도 인간들은 충분히 교감이 가능하다는 것. 쏟아지는 별빛만 있으면 모든 차별이 어느 순간에 연기처럼 마냥 스러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 만약 인간의 삶이 신비로운 거라면 바로 이런 순간들 때문이 아닐까요? 마침내 총각이 몰래 짱 밖아 둔 소줏병을 풀고 우리는 한껏 넉넉해져서 지나간 삶의 작은 이야기들을 즐겁게 즐겁게 풀어 놓았습니다.”
 인천교사산악회 ‘어진뫼’의 회장을 맡고 있는 임미자(46·제물포중) 선생님이 지난 10월 말 3일의 휴가기간 동안 지리산을 다녀온 뒤 전교조 홈페이지에 올린 글 가운데 일부다.
  2002년부터 막강 전력의 ‘어진뫼’ 회장 역을 수행하고 있는 임 선생님은 두 아이의 어머니인 다소곳한 여선생님이다.
 “아마 제가 빼 먹지 않고 산행을 하니까 이합집산이 심한 어진뫼를 아우르라고 회장 자리에 앉혀 놓은 것 같습니다.”
 임 회장은 산을 오르는 이유에 대해 ‘어느날 갑자기 산이 보여서’라고 말한다.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동네 뒷동산인 선포산이 눈에 띄였고 산에 오르니 계속 찾게 되더라는 것.
 어진뫼는 매달 셋째주 일요일 등정을 한다. 한번은 근교산을, 한번은 큰산을 원정하는데 내공이 쌓이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먼산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어진뫼에는 가족단위의 등산애호가들이 많아 ‘빨리’가 아니라 ‘꾸준히 그리고 끝까지’를 모토로 가능하면 완주를 한다.
 특히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엔 산행과 기행을 함께 하는 등산길을 정해 역사를 배우는 기회로 삶는다. “아이들이 한 학기 학교 교육보다 한번의 등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아들인 신율희(산곡남중 1년)군은 영원한 산행동지다.
 임 선생님은 빠른 시일 내에 네팔을 트레킹으로 여행할 계획이다.
 부군은 시인이자 ‘평화와 참여로 가는 인천연대’ 상임대표인 부평여교 신현수 선생. /김기준기자 gjkim@
 ※사진은 김경수 부장님 자리에 있습니다. 사용 후 돌려드려야 합니다. 편집자에서 말해 제 책상 서랍에 보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