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강화
 누렇게 물들인 가을들판이 짠물냄새 물씬 풍기는 해풍에 바다처럼 찰랑거린다. 쌩하고 자동차가 지나간 길가에 늘어선 연분홍색 코스모스가 움찔 몸을 흔들다 해풍을 디디고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강화도는 그렇게 가을이 됐다.
 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여기저기 기쁨이 넘실댄다. 전국 농지의 1%를 차지하는 강화도에서도 수확이 한창이다. 하지만 다자란 곡식을 바라보는 시골 농사꾼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다.
 농군들의 시린 마음도 달래줄 겸, 수확과 나눔의 즐거움도 느껴볼 겸 주말 강화도로 향해보자.
 
 지난 5일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대교를 건너 강화읍에서 터미널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안양대 강화캠퍼스 이정표를 따라 계속 직진해 도착한 곳은 강화군 불은면 ‘강화군농업기술센터’.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는 농경문화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구내식당에서 강화섬쌀로 지은 밥 한그릇을 뚝딱. 이날 센터를 찾은 유치원 아이들도 노란색 체육복을 차려입고 잔디밭에 앉아 재잘거리며 가져온 도시락을 뚝딱.
 강화군농업기술센터는 농촌과 도시를 잇는 사업으로 계절별 농사체험을 강화관광농업연구회와 함께 벌이고 있다. 농사체험을 원하는 도시민들과 실질적인 농업인이 이번 가을에 준비한 농사체험은 ‘속노랑고구마’ 캐기. 지난해 수도권에 사는 시민 2만명이 참가했다.
 농경문화원 김용관씨는 “농사체험을 원하는 도시민들과 농업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며 “도시민들에게는 생소한 농촌체험을, 농업인들에게는 실질적인 소득증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단 식사를 마쳤으니, 일할 준비 끝. 고구마 캐러 출발. 센터 옆 고구마 밭 주인장 남궁영철씨를 따라 나선다. 노란 병아리가 어미 닭 따라가듯, 선생님따라 줄지어 선 아이들 틈에 끼어 도랑을 건너고, 이 밭 저 밭 사이로 총총, 성큼성큼.
 노란 박스에 담긴 호미를 집어들고 고구마 밭으로 전진. 여기저기 재자재잘 쏟아지는 질문에 선생님들 진땀 빼고, 삼삼오오 모인 고사리 손이 땅을 휘집는다. 이마에 송글송글 땅방울이 맺힐 즈음 ‘심봤다’ 아니, ‘고구마 찾았다’. 손에 쥐 비닐봉투에 하나둘 ‘속노랑고구마’가 찬다.
 밭주인 남궁영철씨 “캐봐야 고사리손으로 얼마나 캐겠냐”며 한 트럭 가득 싣고 온 고구마를 땅에 부린다. 시골농군 넉넉한 인심에 원장 교사 할 것없이 둘러앉아 아이들 손에 든 비닐봉투에 또 다시 고구마를 채워준다. 무거울 만도한대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얼마전 단체 고구마 캐기에 나선 초등학교 교사 왈 “애들 아토피까지 해결해 줍디다.”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농경문화원 김용관씨의 농사체험 자랑이다.
 고구마 캐기 체험은 농경문화원이 중매쟁이로 나선다. 에프터 신청은 농사꾼 하기나름. 그렇지만 한번 찾은 이는 여지없이 전화한다. “이번 주말 찾아갑니다.”
 아이들 따라나선 길을 접고, 용두레마을로 향했다. 외포리 쪽으로 핸들을 부여잡고 차창을 모두 열어 불어오는 해풍을 맞이하다보니 누렇게 물들인 가을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잠시 차에서 내려 사진 한장 ‘찰칵’.
 강화도 섬쌀이 좋은 이유 세가지. 살아 숨쉬는 건강한 ‘토양’과 서해 ‘해풍’, 오염안된 ‘깨끗한 물’. 자연이 선물한 천혜의 조건이 강화도만의 특산물을 만들어 낸다. 순무, 사자발약쑥, 인삼, 강화섬쌀, 그리고 속노랑고구마까지다.
 외포리를 지나 석각돈대를 거처 들어선 마을이 내가면 황청1리, 이름하여 ‘용두레마을’(www.kanghwa.pe.kr)이다. 지난해 문화관광부가 전통테마마을로 선정했다. 용두레는 양수기가 없었던 시절, 낮은 곳에 있는 물을 높은 곳에 있는 천수답에 물을 대기위해 만든 도구다. 이 마을 사람들이 용두레질을 하며 부른 노래로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강화용두레질노래는 인천시 무형문화제 12호로 지정돼 있다.
 이 마을 막내이자 이장인 배광혁(54)씨를 찾았다. 마침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농사체험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길이라 이들을 안내하던 이장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재잘재잘거려도 말 잘듣는 유치원 아이들과 달리 조금 컸다고 초등학생들은 제각각이다. 인솔 교사의 목소리 톤이 높다.
 그래도 시골인심은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 넉넉하진 않지만 비닐봉투에 고구마 담아 아이들에게 나줘준다. 좀더 있다갔으면 싶지만 이내 떠나는 아이들이 못내 아쉬운 듯 이장은 ‘반갑습니다. 어서오십시요’라고 적힌 현수막 앞에서 떠나는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 마을이 농사체험에 나선 것은 지난해부터다. 부촌으로 소문나 있어 남 부러울 것 없어보이지만, 역시 쌀개방이 걱정은 걱정인가보다. 쌀개방에 대비해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하기 위해 막내가 나서 ‘하자’하니 동네 어른들 모두 ‘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아직 수입쌀의 무서움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는 게 이장의 설명이다.
 대통령상에 빛나는 ‘용두레질 노래’가 있어 어렵지 않게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됐다.
 이것만으로는 도시민을 초청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 농사체험을 시작했다. 지금 용두레마을에 가면 봄에 심은 벼베기와 고구마를 캘 수 있다. 직접 낫을 들고 벤 벼를 탈곡기에 털어본다. 벼가 털린 짚으로 새끼를 꽈 짚신도 짜고, 바구니도 만들어 볼 수 있다. 논을 지나 갯벌까지 나갈 수도 있다.
 오는 24일 용두레마을에서는 햅쌀 축제가 열린다. 참가비 1만원이면 ‘용두레질 노래’ 가락따라 용두레질도 해보고, 벼도 베보고, 탈곡도 해본다. 햅쌀로 떡도 만들어 볼 수 있다. 경연대회에서 1등하면 푸짐한 상품도 받을 수 있다고 이장이 귀뜸한다. 오리농법과 우렁이 농법으로 만든 유기농 쌀이니 몸에 좋은 것은 두말할 필요없다.
 단 9일부터 3일간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이 기간 강화새우젓축제가 열려, 마을 사람들이 쌀팔러 행사장에 가기 때문이다. /김주희·왕수봉기자 kimjuhee@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