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강화도 둔진진 한옥살림집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우리의 전통 ‘한옥’은 그다지 반길 대상이 아니다.
 일단 ‘한옥은 춥고 불편하다’는 이미지로 못박혀 있으니, 빠르고 편리함을 쫓는 현대인들에겐 빼곡히 싸놓은 성냥갑마냥 답답하게 사방이 막혀 있을 지라도 아파트가 제격이다.
 집은 사람이 들어가 살아야 그때 집이 되지만, 마땅히 재산 증식 수단이 없는 서민들 뿐 아니라 돈을 굴릴 줄 아는 부류에게도 집은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아파트는 현대인들에게 더더욱 제격이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이 한데 모여 살기에는 너무 좁은 땅덩어리에서 아파트가 선택 아닌 필수로 자리한 요즘, 한옥이 잊혀지는 것은 당연하다.
 강화도 둔진진 인근에 한옥 살림집이 있다. 불편하지도 춥지도 않다. 오히려 집주인을 닮아 넉넉함과 멋이 배어 있다. 들어가 살고 싶은 집이다.
 
 최근 한 출판사가 펴낸 ‘한옥살림집을 짓다’를 따라 강화도 둔진진으로 갔다. 멀리 김포평야와 한강에서 이어진 조강이 내려다보이는 둔진진 머리위 나즈막한 둔턱에 자리하고 있는 ‘학사재’(學思齋).
 10남매 중 막내로 젊었을 때 도미, 사업에 성공한 김영훈씨가 집주인인 학사재는 우리네 전통방식 그대로 지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서구식 생활양식에 젖은 집주인의 요청에 따라 입식부억과 화장실, 벽난로를 설치했다는 것 뿐이다.
 나무를 깎고 흙을 빚어 사람이 들어가 살 집을 만들었다. 콘크리트와 쇠, 벽돌 등 사람이 만든 재료가 아닌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사용했다. 땅을 깎고 만든 터가 사람손에 따라 방이 되고, 서재가 되고, 툇마루가 되고, 장독대가 됐지만 학사재는 그래서 자연 속에 그대로 자연으로 서 있다.
 집짓기는 1999년 겨울에 시작했다. 집주인이 관광차 둔진진에 들렀다가 그 풍경에 반한 것도 있지만, 그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10남매가 모여 한 곳에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을 찾다보니 그 곳에 집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것도 대학에서 물리학 가르치는 형님의 권유로 한옥이 됐다.
 집짓기는 터잡이에서 부터 전통방식 그대로다. 집을 기획하고, 설계, 공사에 이르기까지 집 짓는 일을 총괄하는 이를 ‘지유’(指諭)라 한다. 지유는 획일화된 아파트 짓기와 달리, 집주인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다. 집에 살 사람은 지유가 아닌 집주인이기 때문이다.
 그 곳 지형과 지세에 어긋나지 않도록 산중턱에 집터를 잡는다. 학사재가 남향이 아닌 동향인 까닭도 ‘풍수’에 따른 것이다.
 땅을 다지고, 집의 근간이 될 나무를 골라 ‘치목’(治木)한다. 나무를 다루는 일은 여간 정성스러운 것이 아니다. ‘청난다’고 하는 곰팡이 스고, 휘는 현상을 최대한 막기 위해 까다로운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나무를 깎은 일은 ‘모탕고사’를 치른 뒤 시작한다. 한옥은 쌓기식(조적식) 서구 건축기법과 달리, 재료를 다듬어 조립하는 가구식으로 짓는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의 역할이 큰 이유다. 아구가 맞지 않으면 비싸게 사온 나무를 버릴 수밖에 없으니 당연하다. 특히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보(대들보 등)를 얹고 다시 서까래를 받칠 도리를 잇는데는 한결같이 못 하나 쓰지 않는다.
 초석위에 기둥 세우는 일 또한 그렇다. 다림보기로 기둥을 바로 세우고, 초석과 제대로 짝을 이루기 위해 밑둥을 다듬는 ‘그랭이질’은 자연 그대로 순응하는 모습이다.
 흙을 빚어 만든 기와를 얹고, 흙으로 나무사이를 막아 벽을 만들며, 창호지를 바른 창을 냈다. 그렇게 만든 집은 통하기 마련이다. 창호지나 흙, 나무는 유리나 콘크리트처럼 공기의 흐름을 막지 않는다. 물흐르듯 바람을 흘려보내 집안 공기를 순환시킨다. 자연과 집이, 집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통하게 되는 것이다.
 학사재의 또다른 장점은 전통 한옥 방식에 현대식 편리성을 더한데 있다. 욕실과 부엌은 입식을 꾸며 안채에 들여놓고, 대청마루에 벽난로를 설치했다. 현대의 편리한 설비와 재래식 구들이 결합하기도 했다. 고구려시대 처음 도입됐다는 온돌은 아궁이 불을 지펴 방을 덥히는 것으로,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차가 건강까지 책임진다. 보일러 난방으로도 온돌의 장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을 학사재에서 찾는다.
 그러기를 1년6개월. 2001년 여름 학사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집이 집다워졌다. 집은 사람을 담는 하나의 그릇에 불과하다. 집이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꾸며지는 가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에 따라 좌우된다.
 학사재를 만든 ‘장인’들보다 오히려 더 ‘장인’다워진 집주인은 학사재를 강화도의 자연미와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만들고싶어 했다. 그는 해마다 미국 사업장의 재미교포 2세와 미국인들을 학사재로 초청해 한국의 멋과 미를 보여주고 있다.
 재산증식 수단이 아닌 사람 냄새나는 집으로 가꾸고 싶다는 집주인은 그러나 2년의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집 주변 조경공사가 한창이고, 사람 맞을 준비가 아직 덜된 상태라 한다. 세월이 흐른만큼 더 튼튼해지고 아름다워질 학사재를 기대해 본다. /김주희기자 kimjuhee@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