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6일 (월, 제19일)
오늘은 끼리구아 유적을 본 다음, 온두라스의 국경을 넘어 코판 유적으로 간다. 코판 유적을 본 다음 다시 국경을 넘어 과테말라의 ‘리오혼도’까지 되돌아오려고 한다. 오늘은 갈 길이 멀어 오전 6시 15분에 떠났다. 아침 식사는 호텔에서 준비한 도시락을 버스에서 먹기로 했다.
길 양옆에는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으며 미얀마의 시골길을 달리고 있는 것 같다. 한참 후 이번에는 길 양옆이 모두 바나나 밭이다. 3Km정도 지났는데도 바나나 밭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사과, 배 등 과일에 비닐주머니를 씌우는 것처럼 바나나에도 모두 비닐주머니가 씌워져 있다.
일직 떠난 보람이 있어 오전7시 40분, 끼리구아(Quirigua) 유적에 도착했다. 끼리구아는 모다과 강 유역에서 번영한 고대도시이다. 유적은 바로 큰 길가에 있었다. 유적에 들어서니 넓은 잔디광장의 그란 플라자(Gran Plaza) 여기저기에 많은 석비(石碑)가 세워져 있다. 그 비석들을 보호하기 위해 초가지붕이 씌워져있다. 끼리구아의 석비는 코판의 기법과 예술성을 짙게 받으면서도 독자적인 발전을 한 것이다.
끼리구아는 코판 왕조의 세력확장으로 생긴 위성도시로 3세기경부터 번영하였다. 코판의 영향아래서 발전하고 AD 738년에는 코판으로부터 독립하였으나, 겨우 100년밖에 지탱하지 못하고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끼리구아는 AD 731년에 문장문자(紋章文字)를 가지게 되었다. 끼리구아의 역사는 이와 같은 석비(石碑)에 새겨진 신성문자(神聖文字)를 해독할 수 있게 됨으로서 오늘에 전해지고 있다. 석비는 처음에 5년마다 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10년마다, 20년마다 제작하게 되었다. 끼리구아 유적은 1981년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끼리구아를 떠나고 2시간 조금 지나 온두라스의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통과는 비교적 쉬워 25분만에 통과했다. 국경을 지나 10분만에 코판(Copan) 유적에 도착했다. 이곳은 마야문명의 대표적인 도시유적의 하나이다. 8세기경에 장려한 예술문화를 꽃 피우고, 석비와 신전의 계단에 많은 화려한 장식을 오늘에 남기고 있다. 코판 유적은 1980년,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코판의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모다과 강을 찾아 남하한 수렵민이 BC 6000년경부터 농경을 시작하면서 정주하기 시작했다. 코판은 BC 500년경부터 장대한 신전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코판 유적은 티칼 유적과 같이 뛰어난 마야유적이지만 티칼의 다이나믹한 것과는 또 다른 정취를 느끼게 한다. 코판은 BC 1000년경부터 고전기(古典期)의 끝, AD 900년경까지 마야 남부 저지대지역의 중심적인 도시로 번영했다.
또한 코판은 고대 마야의 과학센터로 알려져 있으며 7세기에 코판의 신관(神官)은 1년을 <365.2420>일이라고 산출하여 다른 마야의 도시에도 알렸다. 지금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레고리력의 1년은 <365. 2425>일 임으로 마야의 달력은 정말 놀라운 정밀도다. 이것은 지금과 비교해도 하루에 불과 17.28초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런 코판 왕조도 9세기에는 예정조화(豫定調和)처럼 마야의 역사에서 사라져버렸다.
오늘 이곳에서 안내를 맡은 현지 가이드는 배우 같은 미남청년이다. 유적의 입구에 들어서니 푸른 잔디광장의 그란 플라자(Gran Plaza)가 나타났다. 이곳에는 가운데에 작은 피라미드 하나와 수십 개의 석비(石碑)가 서있다. 그 석비의 대부분은 ‘깊게 판 부조(浮彫)’로 조각된 것들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아테네>라고 할 만큼 코판의 조각기술은 정말 훌륭하다. 유적의 안쪽에 들어서니 거대한 아크로폴리스(Acropolis)가 나타났다. 아크로폴리스는 약 150m 사방의 부지에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많은 돌계단의 중간에 암혹신상(暗惑神像)의 무서운 얼굴이 앞을 노려보고 있다. 이곳은 <죽음의 골짜기>라고 불리고 있으며 또한 ‘로사리라‘라는 지하신전도 있어 들어가 보았다. 미로와 같은 통로의 양옆에 석상 등 여러 가지 유물이 있다. 이 통로는 비상시의 탈출통로였을 것이다. 지하통로에는 휴식처도 화장실도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를 돌아 나오니 <신성문자의 계단>이 나타났다. 높이 30m, 63단의 신성문자(神聖文字)계단이다. 계단의 하나 하나의 돌에는 코판의 역사가 마야문자로 조각되어 있으며 모두 2200개 이상이라고 한다. 이것은 아메리카대륙에서 가장 긴 문자기록이며 AD 755년에 완성되었다.
<신성문자의 계단> 옆에 구기장(球技場)이 있다. 구기장은 마야유적에 반드시 있는 시설이며 두 건조물사이에 있는 공간이다. 나는 구기장의 가운데 서서 죽음을 각오하면서 경기를 하던 당시의 전사들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이 경기는 경기가 아니라 마야 신을 위한 하나의 의식이었다.
유적의 입구에 있는 조각박물관(1996년에 개관)에 갔다. 이곳에는 ‘로사리라‘라고 하는 복원된 신전과 석상, 조각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코판을 떠난 다음, 국경은 그냥 통과하여 과테말라에 입국하였으며, 오전에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오늘밤은 리오혼도(Rio Hondo) 근처의 호텔, ‘엘 아틀란티코(El ATLATICO HOTEL)’의 방갈로에서 숙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