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싶다-파주 ‘헤이리 마을’
 ‘공간’(空間)엔 항상 무엇들이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난다. 특히 공간을 구성하는 존재들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리 해석되기도 한다. 도시란 공간이 시골과 다르듯, 일하는 직장이란 공간이 쉬는 휴식공간과 다르듯 말이다. 마찬가지 같은 공간이라 할 지라도 어떤 일을 겪느냐에 따라 슬픔의 공간이 되기도, 기쁨의 공간이 되기도, 아픔의 공간이 되기도, 즐거운 공간이 되기도 한다.
 파주시에 있는 ‘헤이리’ 또한 그렇다. 농사꾼들이 논·밭을 일구던 곳이던 그 곳은 주택용지로 개발됐다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당한 채 버림받은 땅으로 전락했다. 예술인들이 의기투합해 조합을 결성해 하나둘 모여들더니 창조의 숨결이 흐르는 땅으로 다시 살아났다.
 그 곳에서 지금 축제가 한창이다.
 
 철새도래지가 넓게 펼쳐진 임진강변을 따라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그 끝자락에 파주시가 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북녘땅과 마주서 있는 파주는 그래서 ‘통일’을 생각케 하는 곳이기도 하다.
 자유로 성동나들목에서 나오면 탄현면에 들어서게 되는데 그 곳에 헤이리 마을이 있다. 310번 도로가 통일동산지구와 헤이리를 나누고 있다.
 원래 ‘헤이리’는 지명이 아니다. 이 땅의 원 주인인 농군들이 일하며 불렀다는 ‘헤이리 소리’에서 따온 이름이다.
 토지개발공사가 주택용지로 개발했지만 이 곳은 투자자들의 눈길을 끌지못한 채 방치됐다. 1997년 출판, 영화, 미술, 건축, 공연, 방송, 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모였다. ‘예술인마을’을 만들겠다며 조합을 구성했고 속속 영화촬영소, 아트센터, 갤러리, 박물관, 작가스튜디오, 공방 등 30여동이 들어서 군락을 이루고 있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선 건축공사가 한창인데, 내년 말이면 약 300여개의 문화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지난해 헤이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축제(www.heyri.net)를 열었다. ‘자연과 예술’을 주제로 했다. 올해는 ‘장소와 공간’이다. 비가 오는 가운데 지난 11일 개막한 ‘헤이리 축제’는 헤이리가 갖고 있는 공간적 특성을 잘 담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공간을 인공적 구조물로 채우려던 ‘도시계획’을 다시 예술인들의 손으로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되살리려는 노력을 축제의 형태를 빌어 보여주고 있는 것. 그러나 역시 자연은 자연 그대로일 때 더 돋보이는 법이다. 헤이리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오히려 자연을 인위적인 바꾸는 작업이란 비판의식 또한 갖고 있다.
 사람들은 ‘헤이리’가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리길 원치 않는다. 창조의 공간으로, 소통의 공간으로 남길 원한다. 때문에 축제에서 둘러본 작품들이 때론 생뚱하게 다가올 지 모른다. 난해하고 졸린 작품 투성일 수도 있다. 현대미술의 흐름을 잘 담았다고 헤이리 사람들은 자부하지만, 작가들의 작업공간을 찾은 같은 시기를 사는 다른 사람들은 갸우뚱 고개를 내저을 수도 있다. 때론 인내심까지 발휘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헤이리 마을 사무총장 이상씨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스스로 축제가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든 작품을 다 보지 못했다고 할 정도니 제대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선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중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17일 오후 7시에는 파주 금산리민요보존회의 ‘헤이리 소리’ 공연이 야외공연장에서 열린다. 이어 18일과 19일에는 아프리칸 타악 연주단 쿰바야의 공연과 딩가당가 인형극단의 ‘인형극 반쪽이’, 뮤즈(MUSE)의 클래식 공연, 봉산탈춤 등이 준비돼 있다.
 이번 주말 가을바람을 흠뻑 쏘이며 천천히 헤이리 마을을 둘러보는 것도 정신건강에 큰 도움이 될 듯. 승용차를 이용했다면 마을 곳곳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두고 걷자.
 같은 시기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됐고, 비까지 겹쳐 아직 찾는 이의 발길이 뜸하다. 하지만 축제는 오는 26일까지 계속된다. /김주희기자 kimjuhee@incheontimes.com